서민의 남녀관계

12화 남자가 집 장만해서 억울하신가요

by 서민, 누똥바
남자가 집 장만해서 억울하신가요

한국 남성들의 가사분담이 OECD 꼴찌라는 기사가 나왔을 때, 일부 남자분들은 다음과 같이 울분을 터뜨렸다.

"남자가 집까지 해오는데, 집안일도 해야 해?"

비단 이 기사에서뿐 아니라 남자들은 자신들의 집을 해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무지 억울해했다. 도대체 집은 왜 남자가 해오는 것이며,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

남자가 집을 해오게 된 이유

조선시대를 생각해 보자. 그 시절 여자는 결혼하고 나면 남자 집에 들어와 살아야 했다. 여자는 남편와 더불어 시부모를 극진히 모셔야 했고, 그녀가 낳는 아이는 둘만의 아이가 아닌, 집안의 대를 잇는 중요한 존재였다. '출가외인'이란 말도 한번 남자 집으로 시집간 딸은 죽을 때까지 그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경고였으리라. 해방이 되고 나서도 이 풍습은 오랫동안 유지돼, 남자 집에서는 결혼한 아들에게 방 한 칸을 내주고 거기서 살게 만들었다.

남자가 집 장만해서 억울하신가요

시어머니: (예단을 받고) 아니, 우리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이따위를 예물이라고 보낸단 말이냐? 내 이것들을 당장!
친정어머니: (한걸음에 달려왔다) 저희 형편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굽어 살펴 주십시오.
시어머니: 최선을 다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눈에 보이는 물건이 얼마짜리냐가 중요한 것이지. 이 결혼은 없던 걸로 합시다.
친정어머니: 사돈어른, 제발 그것만은..(하늘을 보면서) 딸 가진 게 죄로구나.

열쇠 3개

불과 30년 전만 해도 혼수와 예단이야말로 여자 쪽 집안의 등뼈를 휘게 만든 원인이었다. 심지어 의사 아들을 둔 시어머니는 아파트, 자동차, 병원 등 '열쇠 3개'를 여자 쪽에 요구해 사회문제가 됐다.

그런데 집값이 올랐다

수백년간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했던 결혼문화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바뀌기 시작한다.

첫 번째,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줄어들었다.
둘째,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바뀌었다.
셋째,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지난 30년간 일어난 이 변화는 그간 결혼제도의 수혜자였던 남자 집에게 커다란 고민을 안겨 줬다. 그전에는 방 한 칸만 내주면 됐었는데, 결혼한 아들을 위해 집을 마련해 줘야 했으니까. '혼수와 예단은 여자가, 집은 남자가'로 역할분담이 이루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집값이 비싸도 너무 비싸졌다는 것. 서울에 번듯한 전셋집이라도 얻으려면 최소 억 단위의 돈이 필요했다. 떼돈을 버는 직업이 아닌 이상 이런 돈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들이 하나라도 힘들 텐데, 아들이 둘이라면 집 마련은 불가능했다.

과거와 반대로 아들 가진 부모님이 한숨을 쉬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남자들은 '달랑' 혼수와 예단만 해오는 여자들에 대한 피해의식이 싹텄다. 그래서 그들은 외쳤다.

"집을 왜 남자가 해 와야 하냐? 한국 여자들의 이기주의는 정말 너무하는구나!"

집장만의 현실
남자가 집 장만해서 억울하신가요

하지만 남자들의 피해의식과는 달리 남자 집에서 전적으로 집을 마련하는 일은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웬만큼 사는 집이 아닌 경우 자식에게 집을 사주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도 신혼부부가 집값의 얼마 정도는 대출을 받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 빚을 갚아 나가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대출을 받아 집을 샀어도 남자가 집을 장만한 게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그 빚을 둘이 갚아야 한다면 그걸 그렇게 해석하면 안될 것 같다.

남자들의 피해 의식

돈을 아끼든 맞벌이를 하든 여자도 그 빚을 갚는 데 기여할 텐데, 그게 왜 남자 쪽에서 집을 마련한 것이겠는가? 심지어 여자 쪽이 여유가 있어서 집도 그쪽에서 장만하는 경우도 여럿 봤다. 한 마디로 지금의 상황은 남자가 일방적으로 피해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남자가 집을 마련해 왔으면, 하고 기대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게 수백년 묵은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고, 실제로 남자 쪽에서 전적으로 집을 장만하는 것도 아니니, 여기에 대해 울분을 터뜨리는 건 그만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집을 남자가 샀으니 집안일은 하나도 안하겠다는 분들께 말씀드린다. 그 논리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시라. 하지만 그 논리가 다른 곳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시길. 애는 여자가 낳았으니 애 보는 건 남자가 전담한다든지, 여자가 장을 봐왔으니 요리는 남자가 해야 한다든지 등등. 

- 12화 끝 -

작가 정보 서민작가정보보기 24년째 기생충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생충이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해 "기생충을 배우자"라고 외치고 다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