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3화 [요조] 계약 도장을 찍은 뒤 벌어진 일

by 요조

드디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작은 부동산 안에서 중개업자와 집주인 할머니, 내가 둥그렇게 둘러 앉았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사이에 두고 모인 사람들. 어색하게 안부를 묻고 뜬금없는 날씨 얘기를 하고 하나도 안웃긴 농담을 던지고 억지로 웃었다. 멀리에서 보면 굉장히 어른들의 자리처럼 보일텐데 실상은 이토록 어색하고,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내가 이 자리에 끼어있다는게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튼 말해봤자 재미도 없고 잘 기억도 안나는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계약을 마쳤다. 이제 자그마한 7평짜리 공간이 2년간은 내 거다! 키를 건네받고 이제 내공간이 된 미래의 책방 문을 덥썩 열었다. 기분이 엄청나게 째질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차원의 막막함이 엄습해왔다. 이제.. 여길 어떻게 꾸며야 하나.

쿠킹스튜디오로 사용하고 계셨던 전 주인분은 식기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거의 두고 가셨다. 휑하게 선반과 테이블과 의자들만 쓸쓸하게 놓여있는 이 공간. 아직은 나를 새 주인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공기의 분명한 적대를 마주하면서 나는 몇 시간을 그곳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떻게 꾸밀까.
어떻게 꾸며야 할까.

멋있게, 아늑하게,
무엇보다 '저렴하게!'

  • [요조] 계약 도장을 찍은 뒤 벌어진 일
    상태가 훌륭했던 선반들과 테이블, 일단은 다 분리하자.
  • [요조] 계약 도장을 찍은 뒤 벌어진 일
    거대한 책상은 일단 벽으로 밀어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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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을 빼앗긴 계약이후 나는 무섭도록 째째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전 주인이 놔두고 간 나무 선반들과 공간박스들, 테이블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무거운 식기들을 버텨야 하기 때문인지 벽에 설치되어 있는 목재선반들은 다행히 아주 튼튼하고 실했다. 일단은 저 선반들을 다 분리한 다음에 책방에 맞게 재배치를 하기로 했다.

'정중앙에 떡 버티고 있는 거대한 테이블은 벽으로 밀어붙여 매거진들을 진열해야겠다.. 나중에 워크샵 같은 것을 할 때는 다시 중앙으로 배치를 옮겨 의자들을 더 놓고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음식을 하던 곳이라 그런지 여기 싱크대가 너무 크고 쓸데없이 좋네. 이 참에 차나 간단한 음식도 같이 팔아볼까? 그럼 일이 더 커지는데. 아, 그리고 조명이 너무 밝다. 은은하면서 독서에 방해가 안될만큼 적당한 조명기구도 달아야겠군..'

  • [요조] 계약 도장을 찍은 뒤 벌어진 일
    길거리의 나무판대기와 벽돌로 만들어봤던 내방의 책장. 얼기설기 얹어서 만든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은근히 튼튼했다.
  • [요조] 계약 도장을 찍은 뒤 벌어진 일
    길거리의 나무판대기와 벽돌로 만들어봤던 내방의 책장. 얼기설기 얹어서 만든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은근히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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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친 그림이 있었다. 바로 내 방에 있는 책장이었다. 길에 널부러져있던 나무 판자들과 벽돌들을 틈틈이 주워 얼기설기 만들었던 책장. 그 방식을 여기에 도입해보기로 했다. 너무 없어보일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일단 해보자, 뭐든지!

  • [요조] 계약 도장을 찍은 뒤 벌어진 일
    내가 처음 내 방 책장에 시도했던 벽돌과 나무판의 조합을 조금 변형시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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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내 방 책장에 시도했던 벽돌과 나무판의 조합을 조금 변형시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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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