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5화 [요조] 내 친구 '김소연 시인'을 소개합니다

by 요조

무사를 오픈하면서 꼭 만들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소개함과 동시에 그 작가가 추천하는 책까지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어 보는 것. 어떤 작가가 좋아지면 그 작가가 좋아하는 책까지 알고 싶어지는 심리가 나는 언제나 컸었는데 그 마음이 이렇게 발현이 되는가보다.

코너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점 찍어둔 작가는 김소연 시인이었다. 그녀의 모든 책들과 추천도서까지 함께 진열했다. 코너의 이름은 <무사한 무사>

[요조] 내 친구 '김소연 시인'을 소개합니다

내가 김소연 시인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알라딘 16주년 기념 책자에 짧게 소개한 적이 있다. 

오늘은 내가 썼던 그 글을 이 곳에도 공개하여 함께 나누고 싶다. (덧. 무사와 함께 <무사한 무사> 도 무사하길 바란다.) 

이렇게 저의 소중한 우주

양해
김소연 시인과 친구가 된 지는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내키는 대로 이등분하여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습니다. 일일이 우리가 나눈 것을 비교해 보지는 않았지만 늘 제가 그녀보다 더 많이 챙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지난 2년을 돌이켜 보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거의 그녀와 함께 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만 같습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었던 나날들, 맛있는 요리들을 먹고 새 앨범과 새 시집을 함께 축하하고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며 놀았던 -- 과 직접 마음을 맞대던 나날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챙겼던 그녀의 책들, 즉각적으로 저를 온온하게 해주었던 그녀의 시와 편지들, -- 이 번갈아 가며 떠오릅니다. 

이 모든 것을 낱낱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가, 그냥 꽁꽁 숨기기로 이내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도 제가 고른 서툰 활자들은 우리의 훌륭한 우정을 볼품없게 만들어 놓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그녀와의 처음과 나중만을, 이왕이면 뭉뚱맞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문단의 제목인 '양해'는,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꼭 쥐여 드리는 단어입니다.

처음
북노마드라는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어떤 날⟫이라는 여행 무크지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문드문 다섯 권이 발간되었습니다. 여러 명의 필자가 참여하는 그 책에 저는 깍두기처럼 악착같이 끼어들어 한 번의 빠짐 없이 다섯 편의 글을 기고할 수 있었습니다. 창간호 때의 주제가 '우리는 여행을 왜 떠나는가'였습니다. 그때 그 글감을 안아 드는 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글을 쓰는 일은 저에게 아주 아주 큰 행복을 직조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슬프고 우울한 내용이건 기쁘고 신나는 내용이건, 글을 쓰고 있으면 이상한 행복이 어떤 포근한 원단처럼 되어 저를 둘둘둘둘 돌아 감습니다. 곡을 쓰는 일의 행복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이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을 때마다 제 역량이나 실력 같은 것은 고려하지도 않고 그저 고맙고 신나서 덥석 받기 일쑤입니다(지금 이 글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아무튼 제 보잘것없는 원고를 그렇게 보낸 얼마 뒤, 북노마드의 윤동희 대표님께서는 출간 기념으로 참여한 필자들과 함께 북콘서트를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그 제안을 듣고 저는 노래만 하는 건지, 아니면 토크만 하는 것인지, 노래를 하게 되면 몇 곡을 부르는지 같은 것들보다 더욱더 궁금한 것을 물었습니다.

"그날 김소연 시인도 오시는 건가요."

일단 2013년 2월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김소연 시인을 처음 만난 때를.

아마 ⟪어떤 날⟫이라는 책에 그녀와 함께 필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제가 그녀의 좋은 친구로써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고 정말 자주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저는 북노마드 윤동희 대표님을 떠올리면 언제나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그녀의 첫인상은 모든 것이 시원시원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키가 컸다는 게, 머리카락이 짧았다는 게, 눈매가, 손가락이, 갑자기 미소가 번지는 얼굴이, 제스처가, 옷차림이 다 한결같이 시원하고 가뿐해 보였습니다. 저보다 앞선 순서였던 그녀가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노를 젓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역시 느릿한 시원함이 느껴졌지만 가뿐하지는 않고 오히려 무거운 느낌에 가까운 목소리. 그런 그녀의 입에서 홀연 '줄행랑'이라는 단어가 또박하게 튀어나왔습니다. 

여행의 찬스는 틈틈이 온다. 매력으로 무장한 여행지 자체가 나를 향해 어서 달려오라 손짓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때에는 선처럼 이어져 오던 시간이 대뜸 공백이 되어 등을 떠미는 경우도 있다. 자, 이 공백을 어떻게든 채워 보시오, 하고 말이다. 그리고 또 가끔은, 줄행랑이다.

제가 썼던 글에 대해서 그녀가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마지막 순서였는데 그저 얼른 이 행사를 후다닥 마무리하고 그녀에게 달려가 인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윤동희 대표님이 끝나고 간단하게 뒷풀이를 하자고 하셨을 때에도 저는 같은 질문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김소연 시인도 오시는 건가요."

뒷풀이 장소는 근처의 막걸리 집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녀의 앞자리에 부리나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술잔을 부딪치며 친해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술을 전혀 못하는 타입이었습니다. 저는 대놓고 서운함을 표시했습니다. 아, 왜 술을 못하세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같이 술을 마시면서 가까워지는 식의 친교에 익숙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저도 그때에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를 만날 때도, 데이트를 할 때도 일단 "술 한잔 하자"고 말하곤 했습니다. 물론 누군가와 영화를 보기 위해 만났던 적도 있었고, 전시를 보기 위해 만났던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에도 일단 "술 한잔 하자"는 말부터 내뱉었습니다. ("술 한잔 하자, 그 전에 영화 하나 볼까.")

"술 한잔 하자"는 말은 타인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나의 카드였던 셈입니다. 다 같이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말하며 건배했던 첫 잔이 그녀 앞에 여전히 놓여 있었습니다. 건드리지도 않아 탁기가 가라앉은 막걸리 잔을 건너다보며 왠지 우리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영영 없어져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우연히 사는 동네가 같아 집까지 같이 오면서 저는 어쩌면 지금이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의 침묵은 결코 편안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대화 사이에 어떻게든 공백을 만들지 않으려고 쓸데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헤어지고 나자 마치 사우나 문을 열면 몰려드는 더운 김처럼 피곤이 그렇게 왔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법으로 "술 한잔 하자"는 카드 말고도 다른 카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는 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카드를 나에게 내밀었던 것입니다.

"같이 순댓국 먹어요."

나중
언니가 뜬금 없이 기타에 대해서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곡을 써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저 역시 시를 쓰고 싶다고 언니를 보챌 때가 많았습니다.

서로의 영역이 옆집 차 처럼 언제나 가까이 세워져 있곤 했기 때문에, 저는 정말 옆집 차 구경하듯 심심하면 언니의 세계를 힐끔거렸고, 언니도 저의 세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 집에 잘 치지 않는 기타가 한 대 있었던 저는 그것을 선물하겠다고 했습니다. 낙원상가에 가서 제가 쓰는 것보다도 더 좋은 케이스와 피크, 카포와 스트랩까지 풀로 세팅하여 언니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멋진 곡을 써서 들려 달라는 숙제를 냈습니다. 

그러고 얼마 뒤에 저는 환경 단체에서 주관하는 열흘간의 크루즈 여행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를 무척이나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언니는 제게 배 위에서 시를 한 편 써 오라는 숙제를 냈습니다. 그 열흘 동안 저는 시인으로서 살았습니다. 아마 언니도 그동안 뮤지션으로서 살았을 것입니다. 크루즈를 마치고 돌아와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그동안 언니는 <돼지>라는 곡을 만들었고, 저는 <나이 든 사람들을>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날 함께 만났던 사람들에게 우리는 노래와 시를 2천 원에 팔았습니다. 잠깐 동안 저는 시인이 되고 언니는 음악가가 되었던 아찔하도록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그때 잠깐 동안, 김소연이 된 것도 같았습니다. 

소중
⟪마음사전⟫이라는 언니의 책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는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라는 말입니다.

중요하다
소중하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돈은 전혀 소중하지 않은 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다. 너무 중요한 나머지 소중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어느샌가 소중했던 당신이 중요한 당신으로 변해 가고 있다. 조금씩 덜 소중해지면서 아주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떄문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당신과 나의 소망이었다. (……)

저에게 소연 언니는 언제나 소중의 기류 안에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명색이 친한 친구라면서 저는 지금 소연 언니가 어디에서 뭘 하고 살고 있는지 영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한 일주일 전에는 뜬금없이 제주도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또 어느 섬에, 혹은 어느 별에 가 있는지 조금도 모르겠습니다. 소연 언니가 저에게 '중요'한 존재였다면 이것이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소중'한 존재로서 이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갱신
앞서 김소연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을 일단 2013년 2월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소연 시인의 불귀'라는 문구가 2011년 12월 16일 새벽 4시 31분 제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되어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언니 언니, 이것 좀 봐요" 하고 호들갑을 떨었던 하루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처음이 그렇게 갱신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의 처음들이 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있을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갱신이 다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는 동시에 우리의 나중도 역시 착실하게 갱신이 되어 갈 터입니다. 우주의 모양이 되어 갈 것입니다.

- 5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