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6화 [요조] 책방주인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by 요조

벌써 여러번 이야기한 것 같은 해방촌 M, 마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해야겠다. 그가 새 책을 냈기 때문이다. 

'이번엔' 에세이라고 했다. 여태껏 사진집만 발간했던 마이크의 첫번째 에세이라니. 

언젠가 같이 밥을 먹다가 우연히 마이크의 옛날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사진을 보고서 먹던 밥을 뿜으며 박장대소했다. 마이크는 '으허허 나 은행다닐 때 으허허' 라고 말했다(너털웃음으로 시작해서 너털웃음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그의 화법이다). 

'마이크가 은행에 다녔다니 말도 안돼' '정장 엄청 안어울려' 등등 몇마디 소란스러운 말들을 나누고는 별다른 진전없이 다른 화제로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것저것 더 묻고 싶었지만 왠지 안좋은 기억을 굳이 들쑤시는 건 아닌가 싶어 조심스러웠다. 금융계 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이 책방 주인이 되는 한 삶의 사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적혀있겠구나 생각하니 일단 나부터 얼른 읽고 싶은 급한 마음이 되었다.

[요조] 책방주인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마이크의 첫 에세이. vacance

마이크는 크리스마스에 무사를 찾았다. 낮 12시, 뚜덕뚜덕 언덕을 오르며 보니 그가 책방 앞에서 떨고 있었다.

"아니 왔으면 왔다고 연락을 주지 거기 그냥 서있어요, 날도 추운데" "으허허 아니 저도 방금 온거에요 으허허"

마이크에게 책을 넘겨받고 몇 권은 진열해놓고 한 권은 내가 읽으려고 챙겨두었다. 그리고 그날, 책은 펼쳐보지도 못했다.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도 몇 장 읽지 못했다. 같은 이유에서였다. 

사람이 바글바글 몰리는 것만이 바쁘다는 말을 뒷받침 해주진 않는다. 사람이 몰리면 몰리는 대로 티 나는 바쁨이 있고, 사람이 없을 때는 없는 대로 티 안나는 바쁨이 있다. 크리스마스날 한차례 손님들이 휩쓸고 지나가고 정산과 씨름하느라 노트북 모니터를 조용히 노려보는 가운데, 어떤 남자 손님이 들어서며 너무나도 경쾌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이야- 한가하시네요!"

그 다음날도 역시 정산과 씨름하며 내가 적은 계좌번호가 틀리진 않는지 핸드폰을 가만 들여다 보는데 어떤 남자 손님이 불쑥 내 자리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책 읽으시는 거에요?"

티 안나는 바쁨에는 이런 애환이 있다. 

결국 책을 다 읽은 것은 크리스마스로부터 이틀이 지난 일요일, 책방을 쉬는 날이었다. 어떤 직업이든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책에 둘러쌓인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고 해서 예외가 되진 않는 것 같다.

두껍지도 않은 책을 3일이나 붙잡고 있었던 것이 괜히 머쓱하여 '책방을 열고 더 책을 못 읽는 나의 삶' 이라고 마이크에게 문자를 보내자 '저 역시 열심히 책내음만' 이라고 답장이 왔다. (문자엔 적혀있지 않지만 앞뒤로 너털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그의 책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나보다 훨씬 오래 책방을 운영한 베테랑의 삶도 녹록치는 않았다.

[요조] 책방주인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책방을 쉬는 날 제대로 독서가 가능한 아이러니!

#39 질문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바쁜 일상으로 채워진다. 입고 메일, 온라인 업데이트, 우편건 포장 및 발송, 엑셀 회계 정리, 정산, 워크샵 관리 등 이 일련의 과정들이 꽤나 주기적으로 돌아간다. 파티션 뒤에서 한가롭고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거나 멍하게 시간을 보낼거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책방주인의 하루는 의외로 바쁘게, 비교적 빨리 지나가곤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다가 가끔 기운빠지게 하는 질문들을 받곤 한다.

"책방 보시면 지루하지 않으세요?"
"이런 한가한 가게를 하면 마음은 편하겠어요."
"먹고 살만하세요? 근데 직업은 뭐에요?"

조금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뭐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전혀 모르는 분들이 갑작스레 이런 질문들을 할 땐 기분이 별로인 걸 떠나서 그저 난감하다.

그러니 부디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책방으로 먹고 사는지, 책방에 있으면 심심하지않은지, 책방에서 책이 팔리는지,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책방 월세는 얼마인지, 아니면 별안간 밑도 끝도 없이 책은 어떻게 만드는지, 이런 책이 많이 팔릴지, 책 만들려면 얼마정도 드는지.. 이런 질문들은 부디 삼가해주시길.. 친해지기 전까지는..

[요조] 책방주인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vacance' 2차 입고를 축하하며 마이크가 찍어준 빙봉군과 나

내가 처음 정산하는 일에 허덕여하던 10월 말. 마이크는 한 눈에 봐도 엄청 복잡하게 정리된 자기 책방 의 정산내역 엑셀파일을 보내면서 정산을 이렇게 '쉽고 편하게' 하라고 했다.

"이게 어딜 봐서 쉽고 편해요" 라고 투덜댔더니 "진짜 쉬운데 이거 으허허" 하고 웃는 그가 정말 재수없었다. 책을 다 읽고 그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깊이 알고 나니, 금융계에 오래 발담그고 있었던 마이크에게 엑셀 쯤은 진짜 '쉽고 편한 일'이었을 것 같다.

나 같은 초짜 책방주인은 감히 다 알 수 없는 노고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면서, 아무튼 바캉스를 떠나는것처럼 책방으로 출근하는 것이 좋다는 마이크.그래서 책의 제목도 <vacance> 라고 지은 마이크. 그의 해방촌 휴가가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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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