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7화 [요조] 2015년의 맛, 2016년의 맛

by 요조

2015.12.31

연말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한 해의 끝을 목도하면서 조금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2015년의 마지막 날 책방을 여는 나의 마음도 바쁘게 요동했다. 책방문을 열자마자 난로에 불을 붙이고 공기를 데우며 커다란 창밖을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저마다 하나의 해에 임한 자신에게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잘했어, 이만하면 수고했다 했을까. 역시 난 안되는구나 절망하고 있을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에게 2015년의 절반은 그저 '책방'뿐이었다. 책방을 내고 나서는 아예 그 공간이 내 세상의 전부가 되고 말았다. 어느 날은 책방이 일터가 되어 그곳에서 사람들과 미팅을 했고 어느 날은 책방이 카페가 되고 밥집이 되어 친구들과 친목했다.

'톡투유' 방송녹화를 앞두고 책방은 합주실이 되어 나는 그 안에서 기타소리에 맞춰 목소리를 뽑았다. 스케줄이 있을 때를 빼고는 지박령처럼 책방에 붙어 지낸 지난 몇 달이 마치 솜사탕을 먹는 일 처럼 감쪽 같다. 다만 그 증거로 벽에 빼곡 붙어있는 고마운 사람들의 쪽지와 엽서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아 읽다보니 나는 '감사'말고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없었다.

[요조] 2015년의 맛, 2016년의 맛
책방을 오픈하고 나서 받은 엽서,카드,쪽지들을 다 벽에 붙여놓았다. 장문의 편지는 따로 보관하고 있다.

sns 책방계정으로 공지를 올렸다.

'오늘은 1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2015년 처럼 쓴 커피를 대접하겠습니다. 오소서.' 그날 온 손님들은 모두 내가 내린 쓴 커피를 맛봐야했다.

[요조] 2015년의 맛, 2016년의 맛
사약이 아니다. 내가 핸드드립한 커피가 분명하다.

2016.1.1

연초는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새해 첫 날을 시작하면서 조금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2016년의 첫 날 책방을 여는 마음이 어제처럼 울렁인다. 뮤지션 김목인은 이렇게 저렇게 외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랑스럽다고 표현했다.

'굳이 옷을 챙겨입고 라면을 사러 가는 것도 티비를 켜놓고 잠드는 것도 그게 다 외로워서래. 아 사랑스런 사람들. 외로워서 사랑스런 사람들'

나는 1월의 사람들이 유독 사랑스럽다.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것저것 다짐하고 결심하는 모습들. 올해에는 담배를 끊을 거야. 운동할 거야. 살 뺄거야. 일기를 쓸 거야. 여행을 갈 거야. 연애를 할 거야. 그(녀)를 잊을 거야. 그리고 또 금방 한결 같이 실패해서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을 얼굴들.

오늘 책방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올해는 꼭 책을 많이 읽을거라는 다짐이 들어있을까. 왠지 그럴 것만 같다. 그들에게 뭔가를 대접하고 싶었다. 그 사람들처럼 사랑스러운 맛이 나는 것을. 또 공지를 올렸다.

'새해 첫 날을 무사히 맞은 책방 무사에서 오늘은 꿀차를 드립니다. 오소서.'

엄마가 하루 한 숟갈씩 떠 먹으라며 어디선가 공수해오신 밤꿀을 들고 출근했다. 한 수저 한 수저 떠 올린 꿀을 뜨거운 물에 소로록 녹여 책방에 찾아온 사람들의 손에 한 컵씩 쥐어주었다. 오래전에 읽은 '작은 아씨들'의 한 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정확하게 옮기진 못하겠지만 더듬더듬 떠올려보면 이렇다.

'잼은 달콤하기 때문에 잼을 먹으면 마음도 달콤해질 것이다'

하루종일 단내를 맡아 나 역시 내내 달았다. 2016년의 내 작은 세상이 무사히 달게 시작되었다.

  • [요조] 2015년의 맛, 2016년의 맛
    무사히 새해를 맞은 책방에게 주는 선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벤더향 캔들
  • [요조] 2015년의 맛, 2016년의 맛
    새해에 들기 좋은 에코백. 김준작가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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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