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9화 [요조] 서러운 뚜껑 열기에 대하여

by 요조

나는 악력이 굉장히 약한 편이다. 그리고 가끔 그 점이 나의 어떤 서러움을 터뜨리는 버튼이 되곤 한다. 일산에서 살았던 2년이 내 인생의 암흑기라면 암흑기였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근처에 친구도 없었던 데다가 혼자서 갈만한 식당이나 선술집도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불면증에 우울증이 겹쳤다. 그때 생긴 버릇이 밤마다 술을 마시고 잠드는 일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피처 하나(2000ml)와 안줏거리를 사 와서 꼬박꼬박 그걸 비우고 잠을 잤다.

그러다가 어느 날 피처 뚜껑이 안 열렸다.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피처 뚜껑이 안 열리던 그날 밤,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맥주 뚜껑 못 여는 일이 그렇게 서러운 일인가 싶을 것이다. 사실 나도 내가 이런 일에 서러워하는 것이 좀 우습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내가 이런 일에 서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건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니었으며 또 이제 와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오늘 아침에는 뜬금없이 엄마가 준 꿀을 한 숟갈 먹고 싶었다. 근데 꿀이 담겨있는 단지 뚜껑이 안 열렸다. 나는 또 서러워질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힘을 주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러움이 오고 있었다. 코끝이 찡-하고 저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결국 꿀단지를 품에 안고 서둘러 책방으로 출근했다. 아무나 손님이 오면 열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요조] 서러운 뚜껑 열기에 대하여
꿈쩍도 안하는 꿀단지

첫 손님 등장.

"혹시.. 힘쎄세요?"

내가 물었다.

"앗, 아뇨."

그녀가 멋쩍게 손사래를 쳤다. 조금 후에 두 번째 손님이 등장했다.

"혹시 힘이 장사신가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네"라고 했다.

"그럼 이것 좀 열어주세요."

그녀는 흡- 하는 소리를 내면서 뚜껑을 열었다. 나는 꿀을 한 숟갈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 내 기분이 꽃처럼 좋아지자 나비들이 왔다. 나랑 3년 넘게 같이 음악 한 루빈이 날라오고 그리고 유희경, 오은 시인이 날라왔다. 나중엔 진짜 나비라는 이름으로 음악 하고 있는 박나비가 왔다.

  • [요조] 서러운 뚜껑 열기에 대하여
    일본에 다녀왔다는 루빈이 사온 맥주와함께
  • [요조] 서러운 뚜껑 열기에 대하여
    유희경 시인과 오은 시인
  • [요조] 서러운 뚜껑 열기에 대하여
    자기 책에 기습 싸인을 하고 있는 오은
이전 현재페이지 123 다음

서러움에서 나를 구해준 전사, 꿀단지 뚜껑을 흡, 하고 열어준 선아 씨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 9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