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10화 [요조] 무사에 찾아온 훌쩍이는 사람들

by 요조

책방에 군인이 찾아왔다. 해군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뜬금없이 '오늘도 무사한 하루 되고 계십니까!'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들었다. 이상한 사람 같았다. 그는 지금 휴가 중이고 내일모레 복귀라고, 나를 못 보나 했는데 봐서 좋다고,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그렇군요" 

평소에 책방에서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한 피로감이 굉장하게 누적되어 있었던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읽던 책에 집중했다. 군인은 코를 훌쩍훌쩍 거리면서 여기저기 책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연신 코를 훌쩍거렸다. 훌쩍 훌쩍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요조] 무사에 찾아온 훌쩍이는 사람들
조금도 맛보고 싶지 않은 추위

'추운데 있다가 갑자기 따뜻한데 들어오니까 콧물이 나오나 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이 정말 추운데. 경보 문자까지 올 정도였잖아.'

몇 분이 흐르도록 책에는 전혀 집중하지 못한 채 훌쩍 훌쩍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 훌쩍 소리가 정말 애처롭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경우에 따라 굉장히 거슬릴 수도 있는 소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가엾게 들리는지.

나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뭐 마실 것 좀 '드릴까요' 도 아니고 '드릴게요!' 하고 선언하듯 말했다. 내가 무척 아끼는 차를 내주었다. 군인은 반색하며 (그리고 여전히 훌쩍거리며) 차를 받았다. 그리곤 조금 뒤 다 마신 컵을 돌려주면서 무슨 차냐고 물어왔다. 사실 그동안 그 차를 마신 손님들은 다 무슨 차냐고 물어왔다.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나도 손님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직접 덖은 홍차라고 하셨는데 홍차치고는 놀랍도록 구수한 감이 있고 맛이 좋아 아껴먹고 있는 차였다. 훌쩍 훌쩍하면서 너무 맛있는데 무슨 차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차가 든 팩을 통째로 줘버렸다. 이제 다시 그 차를 찾아 마실 방도를 궁리해보아야 한다.

군인이 가고 나서는 아는 분이 친구분과 놀러 오셨다. 그 둘도 오손도손 책을 구경하면서 훌쩍거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나는 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에게 판매하고 있는 에코백을 하나 선물로 주었다. 

"이런 거 자꾸 선물로 주고 그러면 안 돼요. 하나라도 더 팔아야죠. 아직 사업가 마인드가 부족하시네요" 

그는 웃으며 핀잔했다.

[요조] 무사에 찾아온 훌쩍이는 사람들
그분이 사신 책들(의 인증샷을 퍼옴)

그가 가고 나서는 친구 C가 오랜만에 찾아왔다. 빨갛게 얼어있는 손에 뭐 긴 게 들려있다.

"뭐에요 그게?" 하고 내가 물었다.
"검이요" C가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웬 검???"
"아니 책방이름이 무사인데, 검 하나 있어야 되는거 아니야? 그래서 사왔지"
"못살아!"

그는 사진을 찍어둬야겠다면서 나를 세워두고 검을 들게 했다.

"더 위로, 더, 그렇지. 시선은 검을 노려보면서. 비장하게. 오케이 고대로!"

[요조] 무사에 찾아온 훌쩍이는 사람들
C가 시키는대로 잡아본 포즈

그는 훌쩍거리면서 만족스럽게 씩 웃었다. 나는 그가 고른 책 세 권의 값은 받지 않았다.
클로징 시간이 6시라고 늘 공지하지만 6시에 딱 맞춰 끝난 적은 없다. 신기하게 6시 즈음 오는 손님이 항상 존재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약속이 있는데.. '

초조해하며 손님이 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일곱시가 다 되어 서둘러 문을 닫는데 뒤에서 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제가 너무 늦게 왔죠."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렇게 추운 날 오셨는데 그냥 가시면 안 되죠. 들어오세요."

나는 문을 다시 열고 불을 켜고 난로를 다시 틀고 음악도 다시 틀었다. 그분은 코를 훌쩍이며 편하게 이것저것 보시고 사인도 받고 돌아가셨다. 결국 약속에는 매우 늦었다.

[요조] 무사에 찾아온 훌쩍이는 사람들
나를 기다리던 다른 서점주인들

나는 오늘 나답지 않게 '훌쩍이는' 사람들 덕에 너무 착했다.
훌쩍.  

- 10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