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11화 [요조] 책방 '무사'의 뜬금없는 커피향기

by 요조

책방의 하루는 대충 이런 식이다. 나는 오후 한시에 출근해서 카운터쪽 멀티탭의 스위치를 켠다. 그럼 카드단말기와 노트북, 발이 시려워 발쪽에 켜놓곤 하는 미니난로에 불이 들어온다. 노트북으로 일본의 쇼난지역 라디오 shonan beach FM 을 튼다. 몇 년 전부터 애청하고 있는 방송인데 책방을 오픈하고 나서는 항상 틀어놓고 있다. 아주 가끔 프랑스의 재즈라디오를 틀기도 한다. 중앙에 놓여있는 등유난로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나서는 정신없지만 티 안나는 각종 잡무를 하고, 친절한 손님에겐 웃으며 무례한 손님에겐 정색하며 여섯시까지 머무른다. 거의 매일 그런 하루다.

[요조] 책방 '무사'의 뜬금없는 커피향기
책방에서 판매하는 책, about coffee

세달 넘게 반복되던 저 패턴 속에서 나도 모르게 알아버린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커피 맛이었다. 매일매일 커피를 내렸다. 커피에 대한 책을 마침 책방에서 판매하고 있어 천천히 정독한 후에 조금씩 흉내내면서 시작한 핸드드립이었다. 사실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요리의 맛이라는 것도 결국 반복 훈련이라고 매일 매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요리하는 지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정말 매일 의식을 치르듯이 커피를 내렸다.

지난 번에 이 지면에서 얘기한 적이 있지만 나는 스케줄이 없는 날은 그저 책방에서 지박령으로서 존재했기 때문에 거의 세달내내 내가 내린 커피만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약속 보다 좀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한 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리고 마셨는데. 뭔가 이상했다. 뭐지 이 밋밋함은. 맛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밋밋했다.

[요조] 책방 '무사'의 뜬금없는 커피향기
매일 커피를 받아주는 고마운 친구. 뒤에 보이는 두 텀블러에 각각 다른 커피를 담아두고 손님들께 드리곤 한다.

이렇게 세달이 또 지나면 맛의 차이에까지 통달한 사람이 되어서 소믈리에처럼 맛만 보고도 음 이것은 케냐군, 이것은 코스타리카로구만, 하면서 멋을 좀 부려볼 수 있을까나. 요즘은 스케줄이 있을 때에도 아침일찍 책방에 들러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아 나올 정도이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커피에 이렇게 재미를 들이게 되다니, 정말 사람 일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요조] 책방 '무사'의 뜬금없는 커피향기
    다양한 종류의 커피들
  • [요조] 책방 '무사'의 뜬금없는 커피향기
    천안 인애학교 학생들이 직접 로스팅한 해미래 원두. 맛이 좋다.
이전 현재페이지 12 다음

그동안 내가 내린 커피들은 어쩔 땐 맛이 좋았고 어떤 날은 맛이 없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풍성감이 있었다. 그래서 맛이 없어도 맛이 있어도 '재미'라고 해야하나, 그런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날부터 책방의 하루가 약간 달라졌다

나는 오후 한시에 출근해서 카운터쪽 멀티탭의 스위치를 켠다. 그럼 카드단말기와 노트북, 발이 시려워 발쪽에 켜놓곤 하는 미니난로에 불이 들어온다. 노트북으로 일본의 쇼난지역 라디오 shonan beach FM을 튼다. 아주 가끔 프랑스의 재즈라디오를 틀기도 한다. 중앙에 놓여있는 등유난로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커피를 내린다. 다른 원두로 커피를 또 내린다. 두 잔의 커피를 들고 한 모금씩 마셔보면서 차이를 음미한다. 티 안나는 각종 잡무를 하면서 커피를 또 내린다. 친절한 손님ㅇ은 붙잡아두고 내가 내린 커피를 맛보게 하고 무례한 손님에겐 한결같이 정색하며 여섯시까지 머무른다.

- 11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