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12화 [요조] 나는 어느새 쇼난에 가있었다

by 요조

(지난번 글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책방에서는 언제나 shonan beach FM이라는 방송을 틀어놓는다. 일본의 쇼난 지역 지방방송이다. 나는 이 방송을 몇 년 전부터 애청해왔다. 말하자면 스마트폰 덕택에 알게 된 인연이다. 디지털적인 인간이 아닌 나는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나서도 사실 한동안 심드렁했었다. 

그러다 혹해서 덥석 사게 된 것이 두 가지 애플리케이션 때문인데, 모르는 노래를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전 세계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그렇게 난생처음 만져보는 스마트폰으로 나는 전 세계의 라디오를 들으며 삼매경에 빠졌고 그때 발견한 방송이 이 방송이었다. 쇼난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나오는 음악들이 좋아서 매일 틀어놓고 살았다. 그 버릇이 이어져 책방에서도 틀어놓고 있게 되었다.

보통날처럼 책방 문을 열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방송국에 견학을 가고 싶다고.

마침 3개월간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것만큼 근사한 선물은 없는 것 같았다. 책방을 오래 비울 수는 없었으므로 딱 3일을 뺐다. 가는 날 - 견학하는 날 - 돌아오는 날. 

일본에 간 김에 이것저것 보고 좀 더 쉬고 올 수도 있었지만 방송국 말고는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사실 없었다. 서둘러 숙소부터 예약했다. 에어비앤비로 방송국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찾았다. 예약할 숙소의 주인인 TOM에게 나의 방문 목적을 이야기했다. 그는 바로 그 동네에 살고 있으면서도 shonan beach FM이라는 방송에 대해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도착할 때까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찾아보겠다고 했다.

일본은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디를 가도 한글 표지판이 쉽게 눈에 띈다. 엄청 겁먹은 것치고는 별일 없이 쇼난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바로 TOM을 만났다. 그는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싶다면서 같이 술을 한잔하자고 했다. 그렇게 따라간 술자리에는 그림을 그리는 료지, 독립 서적을 만드는 미네, 일인 헤어숍을 운영하고 있는 영, 그리고 자그마치 shonan beach FM의 직원분이 와계셨다. 그날 밤은 천국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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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부터 가이드를 자청한 미네 씨와 함께 쇼난 옆 카마리라를 잠깐 구경했다. 해변도로를 달리며 슬램덩크에도 나왔던 기차 건널목을 구경하고,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대형 서점에서 책도 골랐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shonan beach FM 방송국에 찾아갔다. 내 아침과 밤을 함께 해주던 진짜 내 친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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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은 왠지 전날 밤처럼 왁자지껄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전철역까지 걸어가 안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문을 닫을 때까지 이것저것을 구경했다. 술렁술렁 걸어오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왔다. 몇 시간 전이 꿈만 같았다.

이제 나는 "알로-하"라고 인사하는 쿠마 디제이의 얼굴을 알고, 노래를 트는 스튜디오의 붉은 벽을 안다. 손님이 없는 고요한 시간, 눈을 감고 방송을 듣노라면 나는 어느새 또 쇼난에 있다.

- 12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