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15화 입춘기념으로 '길고양이 식당' 열다

by 요조

입춘에 시작한 일이다. 

책방 문 앞에 길고양이를 위한 밥과 물을 두는 일.

우리 동네에는 길고양이들이 많은 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역시 책방에서 가까운데, 나는 밤이면 온갖 기상천외한 고양이들의 목소리를 듣곤 한다. 가끔은 처량하기도 하고 가끔은 세상 세상 그렇게 무서운 소리가 없고 또 어떤 날은 정말 사람이 고성을 지르는 듯한 크고 우렁찬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나처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견딜만한 일이겠지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역일 것이다. 

입춘기념으로 '길고양이 식당' 열다

재작년 여름의 일인데, 집 근처에서 자주 출몰하는 고양이 중 하나가 언제 새끼를 낳았는지 한 네 다섯 마리 정도 되는 새끼들을 몰고 나타난 적이 있다.

나는 통조림이나 물에 불린 어포 같은 것을 주차장 구석에 먹기 좋게 놔두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먹을 것을 주려고 주차장 뒤에 엉거주춤 앉아서 통조림을 까고 있던 내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뒤돌아보니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입주인이었다.

"어.. 고양이 밥 주고 있는데요."

"자꾸 그렇게 밥을 주니까 고양이들이 집 근처에서 그렇게 울어대는 거 아니에요. 왜 밥을 줍니까? 주지 마세요!"

"그래도 얘네가 너무 새끼라.."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입주인은 횅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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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고양이가 싫어도 아장아장 거리는 새끼를 보면 기본적으로 측은지심이 발동될 것 같기도 한데 그녀는 얄짤이 없었다.

길고양이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도저히 새끼를 외면할 방법이 없어 몰래몰래 사료를 던지는 방식으로 흩뿌려주곤 하던 나날들이 지나고 지금은 애들이 다 컸는지 어쩌면 죽었는지 (길고양이들은 당연히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생명이 짧다) 보이지 않는다.

입춘기념으로 '길고양이 식당' 열다

책방을 열고 나서 한동안 미처 생각을 못하다가 입춘이 되던 날 그 생각이 번특 났다. 

'여기는 내 가게니까 방해받지 않고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다!'

왜 입춘날 그 생각이 났을까. 이제 곧 봄이 온다는 생각에 마음에 여유 같은 게 생겼나 보다. 바로 나무로 된 작은 그릇 두 개를 사다가 하나에는 물을 담고 하나에는 사료를 담아 길고양이 식당을 열었다.

과연 책방 앞을 오가는 고양이들이 슬금슬금 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자주 오는 황토색 고양이에게는 '돼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디서 잘렸는지 약간 짧은 꼬리를 가지고 있는 돼지는 틈틈이 나타나 밥을 먹고 가다가, 어느 날은 문을 열어놓은 책방 안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가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책방 손님들은 돼지에게 주라며 통조림이며 사료를 선물로 주고 가시기도 한다. 돼지는 정말 돼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길고양이가 여러모로 인간 사회에 불청객이 되어가고 캣맘이 살해당하는 등 흉흉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슴이 아프다.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도록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개선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 책방에 들러 쉬고 가는 사람들처럼 길고양이들 역시 그랬으면 한다. 

- 15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