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19화 책방 무사, 프라하로 책 배달 가다

by 요조

대뜸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라하로 떠난 친구가 있었다. 그 중대발표를 광화문의 어느 카페에서 했다. 그때 나는 원인모를 두통 때문에 살이 많이 빠지고 지쳐있었다. 일상은 살수록 질겨진다. 그녀는 자기가 36년간 직조한 그 짱짱한 일상을 무슨 레고 블록 부수듯이 거침없이 부쉈다. 얼마든지 다시 쌓으면 된다는 듯이. 보는 내가 얼마나 통쾌하고 신이 나던지 잠시였지만 두통도 잊고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그래, 잘했어, 잘 가, 너무 근사해, 멋있어!

그게 1년 전이다. 그녀는 부모님의 거친 압박(귀국해라, 결혼해라)들을 유연하게 무시하면서 연어처럼 꿋꿋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거친 압박(프라하에 놀러 와라, 내가 있을 때 와라)에 못 이겨 일 년 만에 프라하에 왔다.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렸는데 일 년 만에 올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상은 대체로 살수록 질겨진다. 그 질기고 촘촘한 일상에서 틈을 발견하는 게 녹록지 않다. 내 일상은 하루하루 슬프게 튼튼해진다. 나는 오면서 그녀가 부탁한 책을 들고 왔다. 말하자면 배달이다.

책방 무사, 프라하로 책 배달 가다
그녀가 부탁한 책. 싸인도 적혀있다.

그녀는 프라하에서 팁 투어 일을 하고 있다. 여행객들에게 프라하의 여러 관광 스폿들을 좀 더 심도 있게 설명해주는 의미 있는 일이다. 온 김에 그녀의 투어에 따라나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루돌피눔 앞에서 시작한 그녀의 가이드는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프라하에서의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일상을 그녀는 1년 만에 정말 근사하게 구축해놓았다. 뿐만 아니라 '가이드' 자체에 대한 감동도 있었다. 그 감동을 전부 말하기에는 허락된 지면이 짧고, 그중에 체코의 자랑스러운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것만을 밝혀둔다.

우리는 쉬는 날 프란츠 카프카 뮤지엄에도 들러보았다. 기프트숍에서 카프카의 모습이 그려져있는 수첩을 샀다. 여기에 가사를 쓰면 명곡이 나올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프란츠 카프카 뮤지엄 바로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시책과 헌책들이 사이좋게 어우러져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북촌의 내 책방이 사무치게 눈에 밟혔다. 몇 권의 책을 샀다. 1957년 11월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발사된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한 개 라이카에 대한 그래픽 노블, 체코어로 번역된 어린 왕자, 실비아 플라스의 드로잉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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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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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프라하에 머물고 있다. 미원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봤을 만큼 감칠맛이 도는 맥주의 맛(심지어 가격도 저렴하다), 하나같이 신선한 (그리고 역시 저렴한) 식재료들, 역사가 살아있는 건물들, 자연스러운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는 프라하 사람들의 얼굴에서 마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나는 며칠 뒤 또 한 번의 책 배달을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난다. 아직 내 책방은 직원 1호와 2호 덕에 무사하다.

책방 무사, 프라하로 책 배달 가다
직원2호가 식물들에게 비와 빛을 주고 있다

- 19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