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20화 책방무사, 파리로 책 배달 가다

by 요조

정말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한다. 나는 불문과를 전공했다. 

이것이 왜 부끄러운 고백이냐 하면 불어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숨) 사정이 있어 전공을 바꾸는 바람에 나는 아베쎄데(영어로 치자면 에이비씨디)를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불문과가 전공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꼭 불어로 아무거나 말해보라고 시키기 일쑤였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전공을 밝히지 않으면서 어딘지 죄인처럼 슬금슬금 학교를 다녔다. 그나마 프랑스 문학을 다양하게 접해볼 수 있었다는 소박한 보람만 있는 채로 떳떳하지 못하게 졸업장을 받아들던 순간이 서글프게 또렷하다.

졸업한 지 10여 년이 더 지났으므로 '지금은 다 잊었노라'는 핑계가 통할 수도 있는 시점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떳떳하지 못한 졸업이 계속 거슬렸다. 그리고 결국 다시 불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워낙 불규칙하게 일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학원에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 개인교습을 받고 싶다는 문의 글을 SNS에 올렸다. 그때 말을 걸어왔던 사람들 중에 목이 있었다.

목은 나를 직접 가르쳐주고 싶지만 자신이 파리에서 지내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는 선생과 제자로 만나는 데에 실패했다. 그 대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파리와 한국의 시차는 8시간이라서 우리는 조금 다른 입장으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었다.

예컨대 목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면 나는 막 깨어났을 때였고, 반대로 내가 자기 전에 메시지를 보내면 목은 하루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대화를 정리할 때면 한 명은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한 명은 좋은 하루를 시작하라는 인사를 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의 마음은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울적한 새벽에 젖어있던 나의 이야기들을 아침나절의 목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들어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마음의 톤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에게 소포가 왔었다. 시원하고 청량한 소나무 향이 나는 방향제 왁스와 숙면에 도움이 되는 차가 들어있었다. 나는 왁스를 조금씩 뜯어서 책방의 구석구석에 숨겨놓고 벌건 한낮에 숙면용 차를 마셨다.

나는 목에게 답례로 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파리의 목에게 보낸 멀쑥했던 소포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산전수전 다 겪은 모습으로 다시 나에게 되돌아왔다. 나도 모르는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 했던 것이다.

책방무사, 파리로 책 배달 가다

프라하에 책 배달을 가면서 나는 파리의 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VOILA! 배달에 성공했다.

책방무사, 파리로 책 배달 가다

목은 나의 실물을 처음 보고서 어떤 것이 가장 낯설었을까. 나는 목의 작은 키가 그랬다. 내가 종종 마음을 기댔던, 든든하고 어른스러웠던 목은 실제로 보니 마치 어린 묘목 같았다.

그런 몸에서 놀라운 키다리 아저씨 같은 것이 나와서 나를 보살펴주었다니. 목이 벗어놓은 발 사이즈 215짜리, 내 손바닥만 한 운동화를 보면서 새삼 경이에 젖었다. 목은 나에게 자신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불어로 쓰인' 책을 선물로 쥐여주었다.

"주지 말아요, 나 못 읽어요, 싫어요 싫어요" 나는 비명을 질렀다.

목은 "다 짧은 단문들이라 쉽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하고 말하며 웃었다. 책을 내려다보며 목과의 우정을 증명하려면 아주 길고 고난스럽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은 좋았다.

책방무사, 파리로 책 배달 가다

- 20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