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21화 EDITH 와 NACHO를 위하여

by 요조

지금은 이스탄불 공항 내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이다.

EDITH 와 NACHO를 위하여
인증샷

집으로 돌아가는 중 터키를 경유하게 되어 다섯 시간 동안의 짬이 생겨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2주전 프라하에, 1주 전에는 파리에 있었는데 그저께까지는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프라하에 살고 있는 친구 심이 이렇게 유럽 대륙까지 힘들게 날라와서 한 곳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나를 거의 내쫓다시피 바르셀로나로 보내버린 것이다. 아무 계획도 없이 심의 책장에서 카프카의 책 한 권 들고 간 바르셀로나에서 나는 마침 보내야 하는 원고가 몇 개 있었었어 그냥 느긋하게 원고나 쓰다가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카딸루냐 광장에서 숙소를 찾아 걸어오면서 이곳에서 원고만 쓰기에는 날씨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내가 스토리볼 원고 초창기에 자주 언급했던 해방촌의 M ('스토리지 북 앤 필름'의 마 사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JAJAJA 요조 씨, 지금 바르셀로나라면서요. 나 거기에 친구 있어요. 소개해줄게요. JAJAJA!!!" (스페인어로 '하하하'가 JAJAJA였다. 한국에서도 말끝마다 너털웃음을 짓던 마 사장은 이토록 한결같다.)

그렇게 소개받은 두 친구는 NACHO와 EDITH였다.

매일 나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내가 항상 아무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알아서 나를 여기저기로 이끌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약 5일 동안 두 사람이 일할 때는 원고를 쓰거나 서점을 돌아다니고 두 사람이 쉴 때는 그들이 이끄는 대로 바르셀로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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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도, 그리고 파리에서도 느꼈지만 말 안 통하고 글 안 통하는 외국의 서점을 둘러보는 것은 한편 고통스러운 데가 있다. 수박 겉 핥는 느낌 때문이다. 화려하면 화려한 대로 심플하면 심플한 대로 책표지들은 하나같이 매력이 넘쳤지만 그 속은 영 내가 알기 힘든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 답답함이 바르셀로나에서는 극에 달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자신들의 시간을 쪼개어 준 고마운 두 사람, 나초와 에디뜨에게 책을 선물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라도 책을 사고 싶었던, 순전히 이기심에서 발로한 선의였다.

스피노자와 한병철 교수의 책을 골랐다.

"매일 서점에 가서 내가 읽을 수 없는 책들을 보다 오는 일이 늘 답답했어요. 그러다 오늘 두 사람을 생각하며 책을 골랐습니다. 마치 내가 읽을 것처럼. 그냥 겉표지만 보고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나도 몰라요. 그러나 꼭 다 읽어주세요."

그날 저녁 에디뜨와 나초를 데리고 한국 식당에 데려가 한국 음식을 대접하면서 더듬더듬 영어로 내 마음을 말했다. 두 사람은 고맙게도 정말 기뻐해 주었다.

EDITH 와 NACHO를 위하여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이렇게 우리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친구가 된 것이 너무 기뻤다.

"맛있어요, 오늘 기분 어때요, 좋아요, 매워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더듬더듬 마치 개미처럼 머리를 가까이 대고, 눈을 마주 보며 입모양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 좋았다.

올해 십여 년의 연인 관계를 청산하고 결혼식을 올릴 계획에 있다는 두 사람의 결혼식을 위해 다시 바르셀로나에 오고 싶다. 올 수 있을까.

그때에도 나는 책을 선물하고 싶다. 무슨 책을 들고 오면 좋을까.

EDITH 와 NACHO를 위하여
우리의 마지막 셀피. 공항까지 배웅와준 고마운 두 사람. 또 만나요

- 21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