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22화 요조의 꽃 냄새나는 책정원

by 요조

4월 24일. 책방 무사는 대림미술관 옆 디하우스에서 열린 <가드너스 마켓>에 셀러로 참여하게 되었다. 다양한 가드닝 제품이 들어와 있는 가운데 책방 무사는 식물과 생태, 환경과 자연에 관한 여러 책들을 모았다. 제목에 꽃이나 뿌리, 나무 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시집들도 모아보았다.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책들을 모으던 중 '목수 책방'이라는 책방 겸 출판사를 알게 되었다. 생태와 자연 관련 책만 취급하고 판매하는 곳인데다가 책방 무사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나는 동네 커피에서 커피를 사서 목수 책방에 방문했다. 나무를 닮은 따뜻한 성품의 대표님과 생각보다 오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출판하신 책들을 받아왔다. 다 팔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그 말은 후에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무척 많이 올 예정이니 책을 많이 준비하라고, 도와주는 스태프도 몇 명 있어야 할 거라고 주최 측에서 겁 아닌 겁을 주셨던지라 책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셀렉했다. 백만 원이 훌쩍 넘게 구매했다. 집에 있는 트렁크 두 개, 보유하고 있는 에코백에 가득가득 넣어 운반했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이층의 제일 안쪽이었다.

요조의 꽃 냄새나는 책정원

가능한 한 북촌의 우리 책방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책 배치도 비슷하게 하고 초도 가져와 켜두었다. 큰 창으로 빛이 끊임없이 들어와 참 좋았다. 마켓이 오픈하고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공간을 지키느라 다른 매장의 물건들을 볼 시간이 없었지만 들어오는 사람들의 손에는 다른 곳에서 산 크고 작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요조다 요조, 진짜 앉아있다, 생각보다 실물이 별로다. (혹은 더 낫다)" 

그 좁은 방 안에서 사람들은 내가 다 들리게 속닥거렸고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했다.

요조의 꽃 냄새나는 책정원

그런데 나에 대한 품평을 코앞에서 듣는 것보다 사실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은 다름 아닌 이런 반응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다시 나가며)

"야, 나가자 나가. 책이야 책."

'아..'

나는 그때마다 속으로 아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책방에 있을 때는 당연하게도 책을 사고 싶은 사람만 찾아오므로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 했다. 그러다 화분도 있고 꽃도 있고 이런저런 다양한 물건들이 있는 곳에 있어보니 생각보다 책에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던 것이다. 오자마자 '헉 책이다' 하고는 다시 나간다던지 '난 책하고는 영 아닌 것 같아'라고 바로 등을 돌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조금만 더 있어보지, 몇 권만 좀 들춰보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유독 그런 마음이 더 들었던 것이, 책을 셀렉하면서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책들의 주요 내용은 하나하나 다 훑어보았는데 책들이 모두 너무 근사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에 살고 있는 나무들에 대해 집대성한 책(마로니에 공원의 마로니에는 나무 이름이란다), 죽으려고 올라간 어느 산의 흙냄새를 맡고는 죽으려던 마음을 접고 내려와 십여 년의 노력 끝에 농약과 비료 없이 사과농사를 훌륭하게 성공시킨 어떤 농부의 흙 이야기, 사막에서 나무를 키우는데 성공한 어떤 여인의 이야기, 일기를 쓰듯 하루에 하나의 식물을 관찰한 기록을 모은 책, 식물을 미치도록 사랑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 게릴라 가드닝에 대한 이야기..

요조의 꽃 냄새나는 책정원

책방을 열면서 인터뷰를 엄청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책을 읽는 것의 당위를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독서는 아주아주 좋은 것이다. 그러나 독서가 누군가에게는 안 맞을 수 있다. 그것에 대한 존중도 아주 중요하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일부만 맞다. 내 주변에는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입만 산 쓰레기 같은 사람이 있으며 반대로 책 한 권 다 제대로 읽는 것을 본 적 없지만 누구보다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책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람에게 아무 유감이 없고, 독서를 권유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 러. 나.

그러나 이 날 만큼은 서운함이 있었다.

'이 좋은 이야기를 한 번 읽어보면 좋을 텐데. 어렵지 않은데.'

그런 아쉬움이 커져갈 때쯤 어떤 분이 들어오셔서 책 한 권을 사시며 말을 걸었다.

"저도 셀러로 참여했어요. 저쪽에서 식물 관련 디자인 제품을 팔아요. 식물을 키우고 싶은데 제 손이 닿으면 다 죽거든요. 오죽하면 제 별명이 '식물연쇄 살인마'에요. 그래서 시들 일이 없는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요."

명함을 주시길래 보니까 '시들지 않는 정원'이라고 적혀있다. 시무룩해져있던 나는 빵 터지듯 웃었다.

"하하 저도 그래요. 저도 식물은 키우는 족족 다 죽여요. 무척 애정을 들이는데도 그래요. 제 손에도 문제가 분명 있는가 봐요."

"그래서 요조님도 시들 일 없는 정원을 갖고 계시네요."

그녀는 싱긋 웃었다. 나의 정원. 내가 데려온 꽃 냄새나는 책정원.

"고맙습니다."

여러 가지가 고마웠지만 그냥 고맙다고만 인사했다. 어떤 사람이 산 선인장과 어떤 사람이 산 책 한 권이 똑같이 행복을 줄 것이다. 그거면 되었다.

클로징 타임이 되었다. 나는 으쌰 으쌰 남은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책들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 북촌의 책방 무사로 언젠가 꿀벌처럼, 나비처럼 날아와주길 바라면서.

- 22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