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제주도에 내려오는 목적이 없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혹은 어디를 가기 위해, 아니면 뭔가를 먹기 위해 오곤 했던 제주도는 이제 '그냥' '일단' 와서 그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는 식으로 보내는 여행지가 되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제는 올 때마다 새로워서 설렌다기 보다 익숙해서 설레는 섬이 된 것 같다. 집까지는 아니지만 굳어진 관성이 있어 때 되면 가야 하는 그런 곳, 제주.

제주에 올 때마다 얼굴도장 찍는 사람들과 맛도장 찍는음식들을 통과의례처럼 만나고 먹고, 오늘은 3일째. 그러고 보니 제주에 있는 독립서점 중에 아직 가보지 않은 한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주시 일도동 중앙 시장 내에 있는 '라이키'이라는 서점이다.

어젯밤 중문의 수제 맥줏집에서 만난 미모의 여성이 다녀왔다는 '행복한 시저네'라는 음식점에 나도 오늘 가보았다. 그곳에서 아점을 해결하고 슬슬 제주시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잠시 식사하러 외출 중이라는 메모가 붙어있어 그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보며 시내 구경을 조금 했다. 뒤에 다시 가보니 많은 손님들로 이미 복작복작하였다. 무사보다 훨씬 넓은 공간에 책들과 굿즈도 많아 이것저것 고르는 재미가 좋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철학자인 세네카의 책을 한 권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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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나와 큰길가로 나오다 '아라리오 갤러리'를 발견했다. 그 순간 어떤 책 한 권이 갑자기 떠올랐다. 

바로 최근에 읽었던 '실연의 박물관'.

그 책에 등장한 물건들이 제주도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현재 전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이번에 제주에 내려오면서 그 사실을 다시 떠올리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코앞에 갤러리가 나타나다니. (이런 순간들이 많아 나는 이제 운명을 어느 정도 믿게되었다) 연인과, 원수와, 가족과, 자신의 꿈과의 연을 잃은 사람들, 실연의 추억이 묻어있는 물건들을 실제로 보는 고요한 시간이 책과 다른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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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조용하게 드는 방에 앉아 나의 실연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았다. 이어지고 끊어지는 나의 연들에게 건투를 빌어보았다. 

제주에 왔다

- 28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