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뮤지션이지만 영화에 출연했고, 책도 썼고, 라디오 디제이도 해보았고, 그 외에 딱히 음악과 관계없는 일들을 이것저것 해왔다. 욕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는 짐작을 많이 받았다. 내 생각에도 나는 욕심이 많다(특히 식탐).

그러나 인과의 순서는 욕심이 먼저 가 아니었다.

요컨대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한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요청이 먼저 들어왔고 그리고 나서 욕심이 작용했다. 뮤지션이라는 일로부터 뻗어나갈 수 있는 다른 가지가 많았고 나는 그 가지들을 욕심으로 다 키운 셈이다.

그 프로세스는 내가 책방을 열고 나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했다. 그리고 내 욕심에도 역시 발동이 걸렸다. 그 결과 나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에 관련한 정기적 기고 글을 몇 개 쓰고 있고 (지금 이 글도 그중 하나다), 얼마 전부터는 책 관련한 팟캐스트 <이게 뭐라고>를 김관 기자와 시작했고, 또 뮤지션이 아니라 서점 운영자로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시작했다. 

뮤지션으로서 불려 다닐 때는 항상 양손에 악기가 들려 있었는데 서점 주인으로서 어딘가로 불려가는 길의 양손은 굉장히 홀가분하다(별것 아닐 수 있지만 이 홀가분함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마치 지갑이나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인천시 도서관 발전진흥원이 도서기증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한 '책, 피어라 콘서트'에 초대되었다. 명색이 '콘서트'인데 나는 뮤지션이 아니라 책방 무사 대표로 참석하는 것이어서 역시 양손이 가벼웠다. 

요조라는 이름 대신에 '책방 무사 대표 신수진'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무대 옆에 걸려있었다. 나 외에도 '그림책 공작소'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시는 민찬기 대표님, 그리고 <책빛 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저자인 최종규 작가님이 오셨다. 다 처음 뵙는 분들이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일, 작가로서 책을 쓰는 일, 그리고 그 책을 판매하는 일. 다 책이 좋아서 뛰어들었으면서 우리 셋의 이야기는 점점 우울한 빛을 띄었다.

민 대표님은 당신의 집이 점점 은행의 소유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고, 나는 매달 말이면 정산을 하곤 했는데 보나 마나 결과가 뻔할 것을 알기에 이제는 아예 속 편하게 정산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작가님께서 힘내자고 파이팅 발언을 하셨지만 그게 우리를 결과적으로 더 초라하고 서글프게 했다.

책방 주인들끼리 만나도 같은 흐름을 탄다. 예외가 없다. 결국에는 서로 찡찡거리다가 헤어진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은, 솔직히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한다면 짐작건대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하잖아."
"돈 버는데 쉬운 일이 어딨어."
"다들 힘들게 살아."

그러나 적어도 이심전심이 되는 우리 사이에서라면 얼마든지 신세한탄을 맘껏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묘하게 든든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 편하게 힘들어하는 걸지도 모른다. 행사를 마치고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민찬기 대표님과 최종규 작가님의 얼굴에서 익숙한 것이 보였다. 나와 같이 틈나는 대로 신세한탄을 하는 서점 주인들의 얼굴에서도 보이던 그것.

힘들어요, 힘들어요, 하는 그 어두운 얼굴 틈에서 작게 빛나는 '단호한 행복'의 빛.

나는 '우리 같이 사진 하나 찍어요!' 하고 외쳤다. 우리 세 사람의 단호한 행복의 빛을 기록해두었다.

단호한 행복의 빛

- 29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