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31화 요조의 제주 일일알바

by 요조

툭하면 제주도에서 은둔하는 나에게 카페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가끔은 부르고) 또 멍 때리기에 좋은 기류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 커피맛도 중요하고 인테리어와 음악도 중요하다. 나에게 적당히 무심한 주인도 중요하고 커피만큼 맛있는 디저트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마치 인연을 만나는 순간과 비슷하다. 설명하기 힘든 확신. 그런 것을 느끼게 되면 나는 그때부터 짧고 잦은 정착을 시작한다.

'카페 그곶'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소중한 서쪽의 보금자리이다. 

그리고 동쪽에는 '풍림 다방'이라는 보금자리가 있다. 내가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아무 때나 들러도 빈자리가 많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덩치가 나만한 개가 반겨주던 시절이기도 했다. 커피를 내리던 곰사장님 곁에 쭈그려 앉아 책을 보면서 나는 인연을 만났다는 확신에 차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더랬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 카페는 일약 스타로 발돋움해버렸다.

옛날 얘기가 너무 길어지면 재미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제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하는 그곳에 꾸역꾸역 갔다가 인파에 밀려 그 주변 카페를 못마땅하게 배회하다가 다시 와서 기웃거리는, 좀 처량한 신세를 요즘 맡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풍림 다방에 갑자기 일손이 필요하게 되었다. 마침 읽으려고 가져온 두 권의 책을 다 읽어서 한가했던 나는 손을 들었다.

"사장님, 저를 쓰세요."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 번호를 익히고 간단한 메뉴를 익힌 뒤 일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요조의 제주 일일알바

종종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평소 잘 찍어주지 않는 사진도 함께 찍어드리고 귀여운 고백편지도 받으면서 열심히 노동했다.

요조의 제주 일일알바

오전 9시 반부터 시작해 저녁 7시에 일이 끝났다. 나는 의외로 육체노동에 강하다. (옛날 서귀포에서 공사일을 하루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그 날 이후로 그곳 분들이 나를 신반장이라고 부른다)

나는 알바비 대신에 원두를 요구했다. 책방에서 내려마시고 싶어서였다.

단골이 오시면 내가 열심히 일해서 얻은 원두로 맛있는 아이스커피를 내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엄청난 생색을 내어보리라.

요조의 제주 일일알바

- 31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