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32화 책방 무사, 뜬금없는 민트

by 요조

출근길에 책방을 보고 나는 얼어붙었다.

주인집 할아버지가 책방 간판에 페인트칠을 하고 계셨다. 진 미용실이라고 적힌 간판을 떼고 낡은 나무판의 오래 묵은 결이 좋아 고대로 두었던 것을, 할아버지는 그 위에 뜬금없는 민트색 페인트칠을 해 놓으셨다.

노인의 페인트칠은 엉성할 수밖에 없다. 아무 맥락 없는 색과 엉성한 붓칠 때문에 책방은 순식간에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었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남의 공간을 망쳐놓은 데에
대한 분노 때문에 숨을 쉬기가 괴로웠다.

내가 다가가자 할아버지는 순진하게 노동의 생색을 내셨다. "아이고, 힘들어!" 

진정되지 않는 화를 억지로 누르려니 이상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로 지금 뭐하시는 거냐고 물었다. 나무가 너무 낡아서 페인트칠을 했다고. 목소리에는 어떤 뿌듯함이 담겨있었다.

책방 무사, 뜬금없는 민트

눈물을 참으며 나는 그 낡음이 좋아서 그대로 두었던 거였다고 했다. 

"아무리 집주인 이셔도 그렇지 여기는 엄연히 제 공간인데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렇게 마음대로 하시면 어떻게 해요." 

이런 말을 더듬거리면서 했다. 할아버지는 내 표정을 그제야 제대로 보셨고, 할머니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마누라가 하도 페인트칠을 하라고 재촉해서.. 나도 바쁜데.."

이미 칠은 다 끝나버렸고 내가 사랑했던 오래된 나무간판은 민트색 페인트에 점멸당했다. 이제 와서 이런 대화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책방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나는 집주인 어르신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책방으로 손님들이 주시는 먹을거리는 언제나 나누어 드렸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나를 아껴주셨다. 저 끔찍한 민트색 페인트칠도 사실은 나를 생각해서 하신 일이었다. 그게 더 나를 괴롭게 했다.

아무리 선의를 갖고 하는 행동이어도 상대가 공감하지 못하면 그것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
자식을 위해 어질러진 방을 치워주는 엄마의 선의가, 청소한다고 물건을 여기저기 마음대로 옮겨버린 바람에 매번 필요한 물건들이 손 닿는 곳에 보이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 자식에게는 무의미하다.

할아버지의 선의는 미안하지만 나에게 하나도 와 닿지 못했다. 나는 하루 종일 슬펐다. 할아버지도 그랬을 것 같다.

책방 무사, 뜬금없는 민트

- 32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