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99화 한국영화는 '쉬리' 전과 후로 나뉜다

by 양군

국내 극장의 공식 관객 수 집계가 시작된 지난 2004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52.8%였다. 쉽게 말해 극장을 찾은 두 사람 중 한 명은 한국 영화를 관람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자국영화의 비중이 과반수가 넘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국내 극장가에서는 2003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작년의 '베테랑'까지 총 17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했는데 그 중 한국 영화는 13편에 이른다. 비율로 따지면 무려 76.5%에 해당한다.

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보고 왔다고 하면 "한국 영화를 왜 돈 아깝게 극장에서 봐?"라며 핀잔을 듣던 시대가 있었다. 실제로 한국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를 내세우는 할리우드 영화나 다작으로 노하우가 쌓여 있던 홍콩에 비해 제작 규모나 노하우, 기술 등에서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당연히 완성도에서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었고 극장 점유율도 그만큼 차이가 벌어졌다.

여전히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보다 영화를 잘 만든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의 관객들은 이제 한국 영화를 보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만큼 한국 영화의 재미가 외국 영화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영화의 관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계기를 꼽으라면 역시 1999년에 개봉해 '타이타닉'을 뛰어 넘어 역대 최다관객 신기록을 세운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개봉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는
1. 작품 선정 이유
2. 이 장면, 모르고 보지 마오
3. 영화 속 미친 존재감
의 순서로 구성됩니다.

두 번이나 신기록을 새로 쓴 흥행 마술사

중앙대 연극영화학을 전공한 강제규 감독은 1990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속편 격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각본을 쓰면서 충무로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로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강제규 감독은 박중훈 주연의 느와르 '게임의 법칙' 각본까지 쓰며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강제규 감독은 작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1996년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국내에선 흔치 않았던 SF 판타지 멜로를 표방했던 '은행나무 침대'는 한석규, 심혜진, 신현준 등 배우들의 호연과 강제규 감독의 세련된 연출로 200만 가량의 관객을 모으며 크게 사랑 받았다. 강제규 감독은 직접 각본을 쓰고 기획에 참여한 '지상만가'가 흥행 참패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곧바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강제규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자 한국 극장가 흥행 신기록을 새로 쓴 '쉬리'를 통해서다.

'넘버3'의 3인방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그리고 재미교포 출신의 신예 김윤진이 합류한 '쉬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고 58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역대 한국 영화 신기록을 가지고 있던 '서편제'의 기록은 물론, 세계 박스오피스를 지배했던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국내 극장가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당시 멀티플렉스가 흔치 않았던 시장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성적이다.

'쉬리'의 대성공으로 충무로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떠오른 강제규 감독은 자신의 이름을 딴 제작사 강제규 필름을 설립해 '단적비연수', '베싸메무쵸', '블루' 의 기획, 제작에 참여했지만 모두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강제규 감독은 147억 원이라는 제작비를 들여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출했다. 이미 앞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최초의 천만 영화에 등극했지만 불과 두 달 후에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는 곧바로 '실미도'의 기록을 추월하며 역대 최고 흥행 신기록을 다시 썼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한동안 제작에 전념하던 강제규 감독은 2011년 신작 '마이웨이'를 선보였지만 전국 210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 참패했다('마이웨이'의 제작비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2배가 넘는 300억 원 수준이었다). '마이웨이' 실패 후 대작에 대한 미련을 버린 강제규 감독은 작년에 개봉한 '장수상회'를 통해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한 때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였던 강제규 감독이 앞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한국영화는 '쉬리' 전과 후로 나뉜다 - 양군
CG, 특효 쏟아 부은 한국 블록버스터의 시초

방송가에서는 '한국 예능은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무한도전'의 성공을 계기로 정해진 틀을 깬 다양하고 자유로운 포맷의 예능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뜻이다. 비슷한 이유로 영화계에서는 '한국 영화는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거 같다. 실제로 한국영화는 '쉬리'의 성공 이후 관객 지향적인 영화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급격히 높아졌다.

흔히 '쉬리'를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라 부른다. 그만큼 '쉬리'는 기존의 한국 영화에서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물량공세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박무영(최민식)이 이끄는 북한 특수 8군단이 탈취한 CTX를 이용해 잠실의 백화점을 폭파시키는 장면이나 터널에서의 수류탄 폭파 장면,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OP요원과 특수8군단의 총격전 등은 90년대 한국 영화 제작 환경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사실 '쉬리'가 관객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할리우드 B급 오락영화 수준의 CG나 특수효과 때문이 아닌 멜로를 기반으로 한 애절한 스토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요원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쏴야 했던 유중원(한석규)과 감시를 위해 일부러 접근한 남측의 요원을 사랑하게 된 이방희(김윤진)의 마음은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특히 이방희의 마지막 음성 메시지 장면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로 극장 안 휴지와 손수건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특수8군단을 이끌던 박무영을 연기한 최민식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빼놓고는 '쉬리'를 이야기할 수 없다. 특히 박무영이 변전실에서 유중원에게 "새파란 우리 이민의 아들, 딸들이 국경 넘어 매출구에서, 그것도 단돈 백 달러에 개 팔리듯이 팔리고 있어. 죽은 지 새끼의 인육마저 뜯어 먹는 그 애미, 그 애비를 너는 본적이 있어?? 썩은 치즈에 콜라 햄버거를 먹고 자란 네들이 알 리가 없지"라고 외치던 최민식의 열연은 단연 '쉬리'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론 '쉬리' 개봉 후 한석규가 연기한 유중원 캐릭터는 최민식이 연기한 박무영 캐릭터에 다소 가려진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쉬리'에 출연할 당시 한석규가 한국 영화계에서 차지하던 위상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한석규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자 대기업에서 곧바로 투자 유치를 결정했을 정도. 당시 한석규는 이름값에 한참 못 미치는 2500만원의 출연료를 받고 런닝 게런티 계약을 체결했는데 '쉬리'가 대박이 터지면서 무려 10억 원이 넘는 런닝 게런티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영화는 '쉬리' 전과 후로 나뉜다 - 양군
강제규가 발굴한 재미교포 월드스타

'쉬리'는 액체폭탄 CTX를 두고 벌이는 남한 특수요원과 북한 특수 8군단의 대립을 그린 영화다. 당연히 스토리는 남자 캐릭터 중심일 수 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여주인공의 비중이 적어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중 드라마 '웨딩드레스'를 본 강제규 감독이 신선한 느낌의 신인 여배우 김윤진을 발견하고 그녀를 '쉬리'의 히로인으로 캐스팅했다. 결과적으로 '쉬리'의 김윤진 캐스팅은 제작사에게나 배우에게나 윈윈이었다.

김윤진은 오랜 외국 생활로 표준어 발음이 다소 어색했고 연기 경험도 많지 않았지만 이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신인답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과 죽여야 할 대상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 연기를 풍부하게 표현해냈다. 김윤진은 '쉬리' 이후 '단적비연수', '아이언팜', '예스터데이' 등이 연속으로 흥행실패하며 '쉬리'의 여전사 이미지에 갇히는 듯 했지만 2004년 J.J. 애이브럼스가 제작한 미드 '로스트'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로스트'의 성공 이후 김윤진은 국내에서 '세븐 데이즈', '하모니', '이웃사람' 등을 흥행시키며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김윤진은 2014년 1400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에서 첫사랑부터 아줌마, 할머니 역할까지 섭렵해 배우로서 폭넓은 연기폭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3년부터 새로운 미드 시리즈 '미스트리스'에 출연하기 시작한 김윤진은 올해도 '미스트리스'의 4번째 시즌에 출연하며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7년 전 워낙 크게 히트한 영화이다 보니 '쉬리'에는 당시 단역으로 출연한 배우 중 반가운 얼굴들도 찾을 수 있다. 북한 특수 8군단 소속으로 서울시내 시가전에서 목숨을 잃는 안현철 역은 김수로가 맡았고 영화 막판에 유중원을 심문하는 특별 조사관 중에는 황정민과 장현성이 있었다. 한편 수술 전 이방희 역으로 온갖 힘든 액션 연기를 도맡아 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박하는 아쉽게도 2003년 이후 연예계 활동을 접었다.

- 99화 끝 -

작가 정보 양군작가정보보기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그리고 여전히 90년대 대중문화를 사랑한다. 직업은 따로 있으나 칼럼 쓰기와 블로그 활동이 더 재밌는 글쟁이. (YG와는 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