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소소한 동네책방 이야기

33화 '화'에 대하여

by 요조

재주 라이킷 서점에 갔던 이야기를 몇 주 전 이 지면에 썼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샀던 세네카의 책을 2/3 정도 읽다가 말았었다.

<화에 대하여>라는 책이었다.

'화'에 대하여
바로 이 책.

나는 이 책을 세네카라는 철학자 때문에 산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철학자이고, 그래서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있었다.

바꿔 말하면 '화'에 대해서는 사실 알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화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것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나에게 화는 재채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루룩 일어나는 화는 마치 재채기가 나오기 직전처럼 자기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컨트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를 참으라는 말은 나에게 '재채기를 참으라'는 말처럼 좀 현실성 없게 들린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걸 어떻게 참어?' 하고 반문하고 싶달까.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화를 참지 않는 게 건강에 더 좋다고도 하지 않던가.

아무튼 나는 화라는 감정에 대해 대체로 배타적이지 않다. 책도 그래서 읽는 내내 심드렁했던 게 사실이었다. 세네카는 화라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피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영 그게 나에게 와 닿질 않아서 결국 아까 말했듯이 1/3을 남겨놓고는 나몰라라 해버렸다.

그러다가 그 책을 다시 허겁지겁 찾은 것은 지난주 제주 풍림 다방에서 두 번째 알바를 했을 때였다.

"대체 우리 커피는 언제 나오는 거요?"

짜증이 가득 찬 외침이 들려 설거지를 하다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떤 가족이 있었다. 악이 깃든 고함소리 때문에 카페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겁을 먹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읽다 만 그 책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화가 난 사람은 눈빛이 이글거리며 흔들리고, 가장 깊은 곳에서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올라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이를 부득부득 간다. 화가 난 사람은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고 부풀어 올라 역겨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30-31p

온가족의 얼굴이 한결같이 그러했다. 나는 그 얼굴들을 보면서 세네카가 말한 대로 '역겨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 가족이 역겨웠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 겉으로 보이는 모습 자체가 주는 인상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화를 냈던 숱한 나날들이 있었을 텐데 나 또한 저런 모습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 가족은 카페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면서, 나가는 순간까지 그들의 불만을 역력히 드러냈다. 가족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화의 여운이 카페 안에 감돌아, 손님들과 우리 모두는 얼마간 주눅 들어 있었다.

워낙 인기가 많은 카페라 대기 시간이 길은 데다가,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한 명이니 주문하고 나서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준다면 이런 일은 조금 덜 일어나지 않을까, 사장님이 의견을 냈고 우리는 다 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이런 걸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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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서울에서 이 글을 붙여두니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정독하는 중이다.

- 33화 끝 -

작가 정보 요조글 ∙ 사진작가정보보기 홍대 싱어송라이터 '요조'. 최근 동네책방 주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