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라디오, 개인주의자의 소소한 행복

54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

by 문유석, 이예나

1. '조지프 앤턴'. 살만 루슈디 자서전이다. 샤를리 앱도 사건 때문에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표현의 자유, 문학, 종교, 광신, 문화상대주의의 한계, 인류 전체가 공유하고 있지 못한 현실 하에서 자유와 합리적 이성을 옹호하려면 투쟁해야 하나 적절히 타협하기도 해야 하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데 소소한 디테일이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글로 본 루슈디는 수다스럽고, 구라 대단하고, 심술궂고, 기억력 좋고, 자아도취 기질이 있고, 꽁하다(은신 기간 중에 자신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서운하게 했던 인사들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음). 솔직히 친구로 사귀고 싶지는 않은 타입이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꼬장꼬장하고 비타협적인 인물도 있어야 풍차에 도전할 수 있으리라. 심술궂은 유머 감각, 내가 너무나 애정하는 인도 문화권의 향취 두 가지만으로도 루슈디의 소설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작가들의 노는 물(?)은 차원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자서전에 등장하는 지인들이 수잔 손택, 노먼 메일러(노먼 메일러의 부인이 클린턴을 만나러 가는 루슈디에게 자기가 젊었을 때 클린턴 캠프에서 일했는데 그와 '많이' 가깝게 지냈었다는 귀띔을 해 주는 장면이 흥미롭다), 보노, 나딘 고디머 등이다.

출판계 인사들도 화려한 삶을 누리더라. 초호화 파티를 벌이고 세계적 셀러브리티들과 어울리며. 루슈디의 첫 편집자 리즈 콜더는 모델 경력도 있는 미인인데 출판문화인들이 연 브라질 테마 파티에서 알몸에 새하얀 콜드크림만 바른 채 포즈를 취하여 우승, 리우행 비행기표를 따낸다(이 대목이 유독 부러웠던 이유는 뭘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들

2. 집에서 본 영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 아, 정말 좋았다. 고집센 인종차별주의 마초 늙은이가 이웃 아시아인(몽족) 소년 소녀와 친구가 되는 과정이 사랑스럽고, 어리석은 갱들의 폭력으로부터 그 우정을 지키기 위한 용기와 희생이 눈물겹다. 불편한 지점, 한계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결국 위대한 백인 카우보이께서 불쌍한 동양인들을 구하는 이야기 아닌감), 현실 세계에 실제로 극심한 편견과 벽이 가득한데 완벽하게 정치적으로 공정한 주인공이 아무 선입견 없이 모든 이를 존중하는 이야기란 설교문이거나 팬터지일 듯. 

그런 점에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맥스는 솔직히 현실감 있는 캐릭터라기보다 요즘 시대에 맞게 여성들이 원할 만한 이상적인 동지적 남성상으로 정밀하게 설계된 존재다. 상황판단 후 맞다 싶으니 군말 없이 여성 리더의 지시에 따르고, 상당히 쓸모있고.

영화 라스트씬에 흐르는 고적한 주제곡 앞부분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불렀다. 김민기씨처럼 존재감 있는 목소리였다.

3. 뜬금 없이 오랜만에 다시 빠져있는 음악. 이소라 6집 '눈썹달''. 특히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봄'이 좋다. 잔뜩 쌓인 사건 기록, 결재할 문서와 씨름하다 눈이 침침해져오는 오후 4시쯤 이 두 노래를 들으며 쉬는 버릇이 생겼다. 이소라의 목소리가 방을 메우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느낌이 들곤 한다.

4. 갈수록 중식이 좋아진다. 연남동 '송가'의 유린기, 깐풍게살, 서초동 '대가방'의 탕수육(너무 달고 바삭해서 좀 맛탕 같기는 하다). 인천 차이나타운 '연경'의 철판 유린기와 하얀 짜장면.

5. 대형 서점을 둘러봤다. 늘 보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번엔 아쉬웠다. 진열상의 문제인지 온통 동의하기 어려운 자기계발, 처세서만 가득한 느낌. 베스트셀러 진열대에서 몇 권을 넘겨보다 덮었다. 

취향 문제일 뿐이지만 책을 펼쳤을 때 질색하는 순간이 두 가지 있다. '아직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등의 문장이 튀어나오는 영미권 여류 소설가의 대중소설, 그리고 목차가 온통 '~하려면 ~하라'는 명령문으로 뒤덮여 있는 류의 책들. 두 가지 다 사람들이 얼마나 무엇에 굶주려 있는지를 말해주기 때문에 슬퍼진다.

- 54화 끝 -

작가 정보 문유석작가정보보기 소년 시절 좋아하는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개인주의자. 판사로 일하고 있고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유감'이라는 책을 썼다.
작가 정보 이예나그림작가정보보기 멋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좋아하고 자신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