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 급하고 금방 싫증 내는 B형 남자라서 그런지 영화고 책이고 간에 초반 10분 정도를 견뎌 낼 확률이 높지는 않다. 그 사이에 매력을 느끼지 않으면 바로 아웃이다. 일단 '잘 만들어져야' 그 초반을 견딜 수 있다. 여기서 '잘 만들어져야'라는 것은 기능적인 관점. B급 정서 싸구려도 환영하되, 어차피 그 길로 갈거면 어설프게 하지 말고 확실히 쌈마이스럽게 '잘 만들어져야' 재미있다.

이런 관점에서 과거 충무로에 이른바 '웰메이드' 영화 제작 붐이 일기도 했다. '웰메이드'만 해도 대단한 거다. 자기 하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고 수행해 내는 프로의 솜씨. 그걸 해내는 경우는 관대하게 봐줘도 창작물 중 10퍼센트 미만?

그런데 웰메이드를 넘어 보편적인 감동을 주는 것, 즉 '고전'의 영역은 그 10퍼센트 중 다시 1퍼센트 미만. 10년이 지나서 봐도 좋은 것들이다. 고전이 되려면 핵심적인 메시지나 정서에 보편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작가가 폼 잡지 말고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소박함이 있을 때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 같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자기만의 거창하고 심오한 자기 생각에는 엄청 멋져 보이는 이야기를 하면 점점 독자나 관객은 '이건 뭥미?'하게 된다. 게다가 알고 보면 별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데 작가 혼자 자뻑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

다시보기로 예전 영화 몇 편을 보며 든 생각이다. 월정액 IPTV 시대에 영화 초반이 별로면 바로 버려진다. 이런 건 기억도 안 난다. 어떤 영화는 첨엔 좀 보다가 금세 핵심(?)만 휙휙 넘겨 찾아보곤 치운다. '인간중독' 같은 거. 어떤 영화는 타이틀 시퀀스부터 엔딩크레딧까지 참 공들여 잘 만들었기에 재능과 정성에 감탄하며 보게 된다. 장준환 감독의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같은 경우다. 감독, 배우, 제작진 모두 애정을 갖고 한 씬 한 씬 '잘 만든' 작품이라 보다 보면 고마워진다.

그런데 다 보고 나니 아쉽다. 잘 만들기는 했는데 '어쩌라고?' 하게 된다. 오이디푸스적인 아들의 부친 살해, 인간의 악마성과 악마 내면에 생겨난 의외의 본능적인 애정.. 뭔가 '있어 보이는' 모티브는 많은데, 있어 보이기만 할 뿐 관객으로 하여금 깊이 공감하게 하거나, 충격을 주어 세계관을 흔들어 놓게 하거나 하지는 못한다. 그저 신기한 이야기를 구경하게 될 뿐. 아쉽다. 10년 전에 본 장준환의 출세작 '지구를 지켜라'는 훨씬 투박하고 돌직구 같고 만화같은 사회 비판 풍자 SF였지만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는 정서와 메시지가 있었다. 

이 사회에 벌어지는 온갖 끔찍한 비극의 원흉, 그 인면수심들의 불가해함을 아예 외계인으로 의인화한 후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이 기상천외한 고문을 하며 가해자들의 잔혹함의 이유를 묻는 영화다. 황당해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현실이 더 황당하기에 주인공에 금세 감정이입하게 된다. 인두겁을 쓰곤 할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하는 무리들이 널렸기에 말이다. 사회현실에 눈을 뜬 대학교 1년생 같은 소박한 분노의 정서의 영화지만, 기발한 상상력과 화려한 재간 속에서도 그 소박함이 가슴을 울린다. 지금 다시 봐도 좋을 영화다. '고전'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내놓은 '화이'는 보다 세련되고 더욱 '웰메이드'되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박한 이야기는 없다. 똑같이 인간세상의 불가해한 잔혹함을 소재로 하지만, 인간 사이에 지존파 같이 예외적인 괴물 몇 마리가 존재하니까 우리 선량한 사람들은 화이처럼 살아남아서 개인적으로 복수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로도 보인다. 설마 장준환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런 수준의 이야기는 아니었겠으나, 여하튼 그렇게 보인다는 게 중요한 거다. 

웰메이드와 고전 사이

나는 그래서 감독들의 초기작품들이 좋다. 박찬욱의 복수3부작 중 '복수는 나의 것'이 단연 최고고, 봉준호도 설국열차, 괴물보다 살인의 추억이 좋다. 우디 알렌도 슬랩스틱 코미디인 초기 작품들을 좋아한다. 초기 작품들에는 작가들이 청년 시절을 견디며 기회가 주어지면 꼭 하고 싶었던 투박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성공과 명성을 거둔 후에는 출세작과 다른 새롭고 더 수준 높은(?)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쉽다. 잘 만들기는 하는데 스타일의 과잉, 예술가연하는 자뻑으로 흐르기 쉽다. 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 매니악'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수백만년 동안 인류라는 영장류 동물이 해 온 짝짓기가 뭐 그리 새롭고 전복적인 이야기기에 두 편으로까지 나누어가며 장황한 수다를 떨어야 하는 걸까. 섹스 가지고 무슨 지랄을 하든 이 21세기에 그닥 새롭고 전복적일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장편 영화이자 테러 위협 속에 밴 안에 숨어 촬영지시를 내려 가며 '여성 감독'이 찍은 영화 '와즈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뚜렷한 영화다. 그런데 거창한 여성 인권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 10세 소녀의 "왜 여자는 자전거를 탈 수 없나요?"라는 천진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중심으로 소박하고 일상적이고 킥킥대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여운이 더 깊다.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하지만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 역시 죽은 시인이다'라는 네루다의 말처럼 '옳은 이야기'를 한다고 좋은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를 '잘 해야' 한다. 

'와즈다' 감상에는 윤리적 의무감, 문화적 다양성 옹호 의지 등속이 필요 없다. '케빈은 열 두 살' 보듯이 이 사랑스럽고 엉뚱하고 여우같이 영리하고 능청맞기도 한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를 지켜보면 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이 똑똑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기보다 훨씬 못한 멍청이 남자들의 그림자로만 살아할 것이라는 점, 그것도 영화 캐릭터 뿐만 아니라 실제 소녀 배우의 삶도 그럴 거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소름이 끼친다. 종교, 문화 따위가 이런 야만을 정당화한단 말인가. 이 영화 개봉 후 사우디 여성들은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최소한 그것만으로도 이른바 거장들이 만년에 찍어대는 자기만족용 '예술영화' 만 편보다 대단한 성취다.

잡설의 끝은 아이들과 함께 본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다. 물론 난 예전에 두 번은 본 영화이고, 아이들을 위해 튼 영화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초반의 희극도 후반의 비극도 단 한 씬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다 뻔히 아는 이야기인데도 가끔 베니니의 과도한 수다가 질릴 법도 한데도 넋을 놓게 된다. 베니니의 코미디로는 '미스터 몬스터(Il Mostro)' 역시 숨 넘어가게 웃기고 페이소스도 있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에 이르러서는 천의무봉의 경지다. 지루한 것 못견디는 스마트폰 세대 아이들도 넋을 놓고 본다. '보편성'의 끝판왕이랄까. 이런게 두말 할 필요 없는 '고전'이겠지. 이런 작품 하나만 인류에게 남길 수 있다면 예술가는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 보았다.

- 55화 끝 -

작가 정보 이예나그림작가정보보기 멋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좋아하고 자신 있는 사람.
작가 정보 문유석작가정보보기 소년 시절 좋아하는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개인주의자. 판사로 일하고 있고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유감'이라는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