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책 : 처음이라 서툰인생 예습하기

22화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by 위즈돔

'제가 반장이 된다면!'이라는 말로 우리 반을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마음껏 뽐내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세요? 전 시장도 구청장도 아니지만 서울을 좀 더 재미있고 살아있는 도시로 만들 작은 변화들을 매일 상상해요. 저와 함께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 프로젝트에 함께 하지 않으실래요?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

안녕하세요, “저는 도시를 관찰하고 디자인을 통해 그 공간을 혁신하는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조경가’ 정성빈입니다” 라고 멋지게 소개하고 싶지만 실은 일에 쫓겨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 서른 살 청년 정성빈입니다.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지금으로부터 불과 10개월 전, 저는 네덜란드에서 도시건축을 공부하던 배고픈 유학생이었습니다. 유럽에서의 유학 생활, 꽤 로맨틱할 것 같다고요?

네, 낭만의 상징인 바게트 빵을 매일 철근같이 씹어먹고, 지은지 몇 백 년도 넘은 도서관에서 책과 잠과 밤새 씨름하며 치열하게 공부하기도 했죠. 청운의 부푼 꿈까지는 아니지만 매 순간이 새로운 도전이고 배움인 나날들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RTM100』 (부제: 100 intervention in the Rotterdam public space)

이 책은 표지와 맨 뒷장의 소개 글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책이었어요.

마치 틀린 그림 찾기처럼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두 개의 사진 100쌍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었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전부 사진뿐이었거든요.

당시 영어와 피곤한 밀당을 하고 있던 저는 이 ‘그림책’이 참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큰 부담 없이 한 장 한 장 마음 편히 넘기던 것도 잠시 이 책이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죠.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RTM100 책 내용 중 사진 1(좌면)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RTM100 책 내용 중 사진 2(우면): 아무것도 없는 삭막해 보이는 돌기둥에 그네만 몇 개 달아주었더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원으로 탈바꿈합니다.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 책에는 이렇게 100개 공간의 Before & After사진밖에 없었지만 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는 충분했어요!
이전 현재페이지 123 다음

네덜란드 로테르담시의 공공공간 개선에 대한 100가지의 생각들이 담긴 이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Before & After 사진으로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시에서 마주치는 일상의 공간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작은 변화로 조금 더 나은 공간과 삶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책이었죠.

조경과 도시건축이 전공이었기에 그 동안 저는 거대하지만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느낌의 디자인만 해왔거든요. 그런 저에게 아주 사소한 변화만으로 같은 공간의 효용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느낌표로 또 무한한 물음표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 놀라움과 충격도 잠시, 졸업을 위한 사투 속에 강렬했던 첫 만남은 이내 잊혀져 아련한 감정으로 변할 때쯤이었어요. 막 한국으로 돌아오려는 찰나 『RTM100』을 만든 작가를 우연히 만나게 됐어요. 어떻게 이 책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비하인드스토리를 들으며 저도 한국에 돌아가면 꼭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작가에게 “I will send a book to you someday, if I make Seoul100” 이란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습니다. 그 약속을 열 달 후 현실로 만들고 있는 제 모습을 그때는 생각도 못했어요.

서울의 작은 변화를 마음껏 상상하라

‘서울 100’이라는 프로젝트는 ‘작은 공간을 자세히 관찰하며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은 연구’라는 의미로 저 혼자서 시작했어요. 10년 넘게 매 수요일마다 서울의 마을들을 답사하는 건축가 조정구 님처럼 공간을 다루는 디자이너로서 눈의 화소 수를 높이는 연습이자 작은 실천들을 긴 호흡으로 이뤄보자는 소박한 마음가짐으로 출발했죠.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작은 변화로 서울의 공공공간을 변화시키는 100가지 아이디어, ‘서울 100’

날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풍경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니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도시의 일상들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무심코 지나치던 시각장애인들의 보행을 위한 노란색 점자 블록도 새로운 변화 거리로 느껴지고, 매일 지옥철 출퇴근을 반복하는 무표정한 직장인들을 관찰하며 어떤 공간적 변화로 이들에게 활기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버스를 기다리며 ‘환풍구 위 빈 공간에 메릴린 먼로 공기인형을 놓으면 사람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됐습니다.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서울100 @청량리역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의 현재 모습 (Before)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서울100 @청량리역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의 변화된 모습 (After)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서울100 @강남역 지하철 환풍구의 현재 모습 (Before)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서울100 @강남역 지하철 환풍구의 변화된 모습 (After)
이전 현재페이지 1234 다음

혼자서 아이디어만 잔뜩 상상해놓고 실제 서울에는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끝나는 게 아닐까 싶을 때쯤 프로젝트를 함께 할 동료 셋을 만났어요. 몰개성적으로 변해가는 서울에 대한 감상과 대학 졸업 후 사회인이 되면서 점점 무채색으로 변해가던 서로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달까요?

어쩌면 저희의 프로젝트는 도시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자 우리가 잃어버린 각자의 색깔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 첫 번째 지역, 이태원

서울 100의 첫 번째 프로젝트 지역은 ‘이태원’입니다. 이태원은 서울의 그 어느 곳보다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저와 동료들은 새롭고 다채로운 실험을 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실제로 이곳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었기에 주민 인터뷰와 답사를 반복하며 작은 노력으로 이태원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를 마음껏 상상하고 있어요.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태원 거주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곳곳을 답사하고 다니고 있답니다.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서울시 도시정책박람회에도 참여해 시민들은 저희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의견도 듣고요.
이전 현재페이지 12 다음

생활 속 불편을 주는 보도 환경이나 경관 개선부터 지역 내 숨은 유휴 공간을 발굴하여 활용하는 것까지 지역에 숨어있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능과 결합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태원100 @경리단길의 현재 모습(Before)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태원100 @경리단길의 변화된 모습(After): 표지판 뒷면을 활용한 경리단길 안내 지도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태원100 @보광동 재개발 지역의 현재 모습(Before): 슬레이트 지붕 위에 방수포와 돌이 어지럽게 늘어져있는 모습
  • [사람책 : 정성빈]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태원100 @보광동 재개발 지역의 변화된 모습(After):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과 결합해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동시에 경관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어요!
이전 현재페이지 1234 다음
함께 채우는 서울 100

처음에는 그저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사소한 변화들이 모이면 아주 거대한 변화는 아니더라도 한 눈금만큼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으로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프로젝트가 지속되면 공공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0’에서 ‘1’로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믿음도 있었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가장 많이 변한 건 이태원도, 서울도 아닌 바로 저 자신입니다. 좀 더 살기 좋은 도시를 상상할수록 도시농업, 도시재생, 커뮤니티 디자인 등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겨났어요. 마치 도시가 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무표정한 얼굴로 매일 똑같은 골목을 걸어 다니고 있진 않나요? 기왕이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나의 도시를 바꿀만한 작은 변화들을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열 가지 아니 한 가지라도 재미난 아이디어가 생겼다면 저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만들어봐요! 아마 도시가 저에게 말을 건 것처럼 당신에게도 분명 말을 걸어올 거예요.

사소한 상상이 만드는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을 변화, 함께 만들어가지 않을래요?

- 22화 끝 -

작가 정보 위즈돔CP작가정보보기 살아있는 경험과 지혜로 가득찬, 당신의 사람도서관 위즈돔에서 인생선배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처음이라 서툰 인생 예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