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vs 미국 직장 1mm 차이

1화 매니저들과 저녁 같이 하기

by 임정욱, 박소라

내가 보스턴인근 월쌤에 위치한 라이코스의 CEO로 발령을 받은 것은 2009년 2월이었다. 2008년말 리먼브라더스가 붕괴하면서 전세계에 금융위기가 도래해 세상이 얼어붙은 때였다. 미국의 실업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상승하던 때였다.

미국 유학 경험은 있지만 미국직장에서 일을 해본 경험은 없었던 나로서는 이런 암울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미국인들 80여명으로 구성된 회사를 끌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더구나 10여명을 구조조정으로 내보내는 와중이어서 직원들은 혹시 자기도 잘릴 수 있다는 공포심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었다. 사무실을 걸어 다니다 보면 PC화면에 이력서를 띄우고 다듬고 있는 직원들도 보일 정도였다.

한국식 친밀해지기 step1 : 면담

어떻게 하면 나를 저승사자로 대할 직원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내가 택한 방법은 1:1 면담이었다. 한 사람당 30분씩 최대한 시간을 내서 차 한잔을 놓고 만나서 이야기했다. 일단 아무 얘기나 하다 보면 친밀감이 형성될 것 아닌가. 직원들도 새로운 CEO가 뭔가 들으려고 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두 명씩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람은 밥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이 내 경험이었다. 미국사람이라고 그게 다르겠냐 싶었다. 그리고 밥을 같이 먹고 내가 돈을 내면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사장하고 같이 밥을 먹는다고 꼭 사장이 자신 몫까지 계산해 줄 것이라고 생각 않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웬만하면 윗사람이 밥값을 내는 한국식 문화를 적용한 결과 많은 직원들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내 점심시간은 하루에 한번이기 때문에 일단은 매니저급부터 같이 하기 시작했다. (1년쯤 지나니까 거의 전 직원과 점심을 한번씩은 따로 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보스턴에 단신 부임이었다. 가족들은 몇 달 뒤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회사 바로 앞에 있는 모텔에 장기 투숙중이었다. 보스턴에는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회사에 나가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었고 쓸쓸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직원들과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부족한 내 영어 실력을 보완하는 영어 회화 연습 시간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한국식 친밀해지기 step2 : 저녁 약속

그런데 문제는 저녁시간이었다. 5시에서 6시사이에 직원들은 거의 다 집에 가버리는데 나는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다. 모텔에 돌아가서 한국에서 사온 3분카레나 컵라면을 먹기도 했는데 그것도 조금 지나니 질렸다. 그래서 주요 매니저들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패밀리 타임

그런데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더니 몇몇 매니저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단박에 OK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와이프에게 물어보고 알려주겠다"는 답이 많았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한 2주일 정도 거의 매일 저녁시간에 매니저들을 데리고 저녁을 먹었다. 맥주 한두 잔을 곁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점심과 달리 별로 호응도가 높지 않은 것 같았다. 이래저래 집에 일이 있다고 변명을 하면서 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까워진 매니저에게 저녁을 하면서 진심을 물어봤다. 그 친구는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라 아내와 별거 중이었다.

그 친구왈 "여기서는 웬만하면 모두 점심약속으로 하지 저녁약속을 하는 경우는 없다. 비즈니스 때문에 저녁을 하는 경우는 거래처 사람이 출장을 와서 계약을 하거나 하는 중요한 경우에 한하지 웬만해서는 저녁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특히 결혼한 기혼자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 본사에서 온 사장이 "저녁 먹자"하니까 내키지 않으면서도 따라 나온 것이었다. 사장이 저녁 먹자고 하면 있는 약속도 취소하고 따라오는 한국식 문화에 익숙해진 나의 실수였다.

1년쯤 지나서 휠씬 친밀해진 인사 담당 매니저와 그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미국에서는 웬만하면 저녁은 가족과의 시간(패밀리타임)으로 간주하며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저녁시간을 내달라고 회사에서 요구 못한다.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면 배우자에게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때 내가 그걸 모르고 실수한 것이라나.

자기가 좋아서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회사에서 직원에게 패밀리 타임을 건드리면서까지 회식(?) 등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계기였다.

- 1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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